1918년 9월, 하바롭스크가 백군에게 떨어진 직후 아무르 강가에서 한 여자가 총살됐다. 서른셋. 극동 소비에트 정부의 외무위원이었고, 조선 사람이었다. 처형 직전 그가 열세 걸음을 걷게 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의 열세 개 도를 하나씩 밟는다는 뜻이었다고.
김 알렉산드라는 연해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러시아로 이주한 조선 사람으로 동청철도 공사장의 통역이었고, 딸은 러시아 학교에서 교육받은 첫 세대 한인 여성이었다. 러시아 말과 조선 말을 다 하는 그는 아버지처럼 통역이 됐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우랄의 벌목장에 한인과 중국인 노동자 수천 명이 끌려가다시피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들의 통역으로 갔다가 그들의 대변자가 됐다. 임금을 떼먹는 업자들과 싸우고 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 볼셰비키가 됐다.
혁명이 나자 그는 극동으로 돌아왔다. 하바롭스크 소비에트의 외무위원 — 외교를 맡는 자리다. 조선 사람이, 그것도 여자가, 러시아 혁명 정부의 각료가 된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모아 한인사회당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이동휘가 그 당의 대표였다. 조선의 독립과 세계 혁명이 같은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백군과 일본군과 체코군단이 극동을 휩쓸자 그는 도시를 빠져나가려다 붙잡혔다. 재판은 짧았고 처형은 빨랐다. 시신은 강에 버려졌다고 한다. 김경천이 잡혀가기 18년 전, 홍범도가 강제 이주되기 19년 전의 일이다. 이 시리즈에서 소련이라는 나라와 얽힌 세 사람 중 그가 가장 먼저 죽었고, 유일하게 소련이 아니라 소련의 적에게 죽었다.
그의 이름은 오래 어느 쪽에서도 불리지 않았다. 소련에서는 하바롭스크의 거리 이름 하나로 남았고,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자라 언급되지 않았으며, 북한에서는 이동휘 계열이라 지워졌다. 2009년에야 한국 정부가 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세 나라에서 세 가지 이유로 잊힌 사람이 90년 만에 한 나라에서 기억된 것이다.
이 시리즈의 문법으로 보면 그는 경계를 넘은 것이 아니라 경계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연해주의 한인 마을, 두 말을 하는 집, 두 나라 사이의 통역. 처형장에서 열세 걸음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 이야기가 생겨난 이유는 분명하다. 평생 러시아 사람으로 산 여자가 죽는 순간에 조선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사람들이 바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