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편이다. 앞의 사람들이 칼과 붓과 흙으로 경계를 넘었다면, 이 사람은 그냥 바람에 밀려 넘었다. 그런데 넘어간 거리로 치면 이 시리즈에서 손에 꼽는다.
문순득은 전라도 우이도의 홍어 장수였다. 1801년 겨울, 홍어를 사러 흑산도 쪽으로 나갔던 그의 배가 돌풍을 만났다. 배는 열흘 넘게 표류하다 낯선 섬에 닿았다. 유구, 지금의 오키나와였다. 여기서부터 3년 2개월의 여행이 시작된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를 잘 대해 줬다. 여덟 달을 머무는 동안 문순득은 그곳 말을 배우고, 풍속을 눈여겨봤다. 조선으로 돌려보내려는 배에 올랐는데 그 배가 또 표류했다. 이번에 닿은 곳은 여송, 지금의 필리핀 루손이었다. 스페인이 다스리던 땅이다. 거기서 아홉 달. 그는 성당을 보고, 서양 사람을 보고, 은화로 물건 사는 법을 봤다. 그러다 마카오로 가는 배를 얻어 타고, 마카오에서 광저우로, 광저우에서 북경으로, 북경에서 의주로 — 걸어서 조선에 돌아왔다. 1805년 정월이었다.
홍어 장수가 오키나와와 필리핀과 마카오와 북경을 보고 온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그 네 곳을 다 본 사람은, 아마 그가 유일했을 것이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술자리 무용담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이도에 유배 와 있던 사람이 정약전이었다. 흑산도에서 물고기 책을 쓰던 정약용의 형이다. 정약전은 이 홍어 장수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받아 적었다. 표해시말, 표류의 처음과 끝이라는 기록이다. 그 안에는 오키나와 말과 필리핀 말의 어휘가 백 개 넘게 조선말 발음으로 적혀 있고, 오키나와의 장례 풍습, 필리핀의 닭싸움, 마카오의 서양 배 구조까지 들어 있다. 문순득은 글을 몰랐고 정약전은 그곳에 가 본 적이 없다. 두 사람이 합쳐져 조선 최초의 세계 견문록 하나가 나온 셈이다.
그리고 뒷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몇 해 뒤 제주도에 정체 모를 외국인들이 표착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9년 동안 돌려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정이 문순득을 불렀다. 그는 그들과 대화했고, 그들이 여송 사람임을 밝혀냈다. 덕분에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홍어 장수가 조선 유일의 필리핀어 통역이 된 것이다. 조정은 그에게 명예 벼슬을 내렸다.
이 시리즈에 그를 넣은 이유는 그가 예외라서다. 안에서 길이 막힌 적도 없고, 밖에서 정상에 오른 적도 없고, 무엇보다 결말이 좋다. 돌아와서 대접받고, 기록을 남기고, 고향에서 일흔까지 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없던 것이 그에게는 있었던 셈인데, 곰곰 보면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운이었다. 유배 온 학자가 마침 옆집에 있었다는 운. 경계를 넘은 사람이 잊히느냐 남느냐는, 어쩌면 그 사람이 아니라 받아 적는 사람이 있었느냐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