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완벽 — 포로에서 무역선 선원으로, 베트남을 세 번 본 조선인

1604 · 베트남 호이안

조선 사람으로 처음 베트남을 본 사람은 사신도 상인도 아니었다. 포로였다.

조완벽은 진주의 젊은 선비였다. 정유재란 때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갔고, 거기서 일본 상인의 집에 팔렸다. 그 상인은 배를 가지고 남쪽 바다로 장사를 다니는 사람이었다. 당시 일본은 동남아시아와 활발히 무역하고 있었고, 배마다 글을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상인은 조선 선비가 한문을 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배에 태웠다.

그렇게 조완벽은 안남, 지금의 베트남 중부에 갔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그 시절 베트남의 호이안은 일본과 중국과 포르투갈의 배가 드나드는 국제 항구였다. 조완벽은 거기서 베트남 관리들과 한문으로 필담을 나눴는데, 그 자리에서 뜻밖의 일을 겪는다. 베트남 사람들이 조선의 시인 이수광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몇 해 전 이수광이 북경에서 베트남 사신과 시를 주고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 시가 베트남에 퍼져 있었다. 이역만리 항구에서 포로 출신 조선 선원이 자기 나라 시인의 이름을 들은 것이다.

1607년 조선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 포로들을 돌려받을 때 조완벽도 돌아왔다. 10년 만이었다. 그는 진주로 돌아가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가 이수광에게 닿았다. 베트남에서 자기 이름을 들은 조선인이 있다는 것을 안 이수광은 조완벽의 이야기를 자세히 받아 적어 자기 책에 실었다. 조완벽전, 지봉유설에 실린 짧은 전기다.

2백 년 뒤 문순득이 필리핀에 표착하고 정약전이 그 이야기를 받아 적게 되는데, 그 원형이 여기 있다. 밖에 나갔다 온 사람과 그것을 적어 준 사람 — 조선에서 바깥 세계의 기록은 늘 이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으로 만들어졌다.

조완벽에 대해 남은 것은 이수광의 글 몇 장이 전부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베트남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이수광이 옮긴 몇 줄 — 코끼리를 타는 관리, 두 번 익는 벼, 조선과 달리 더운 겨울 — 로만 남았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멀리 간 사람 중 하나가 가장 적은 기록을 남긴 셈이다. 포로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주에서 한평생 과거 공부를 했을 것이고, 베트남은 그의 인생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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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