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철 — 일곱 살에 끌려가 가가번의 무사가 된 소년

1600 · 가나자와

1592년 여름, 서울이 함락됐을 때 일곱 살 아이 하나가 일본군 장수에게 붙잡혔다. 아버지는 조선의 관리였고 전투 중에 죽었다고 한다. 아이의 이름은 김여철이었다. 장수는 아이를 죽이지 않고 배에 태워 일본으로 보냈다.

아이가 간 곳은 그 장수의 아내 집이었다. 그 아내는 일본 최대의 영주 가문 중 하나인 마에다 집안의 딸이었다. 아이는 그 집에서 자랐다. 일본 이름과 옷과 말을 배우고, 무사의 교육을 받았다. 조선의 관리 집 아들이 일본의 무사 집안에서 키워진 것이다.

김여철은 자라서 가가번, 지금의 가나자와를 다스리는 마에다 가문의 가신이 됐다. 그리고 올라갔다. 무사의 핵심 자질인 무예와 학문을 두루 갖춰 번의 행정을 맡는 마치부교 자리까지 이르렀고, 녹봉이 천 석에 달했다. 조선에서 온 소년이 일본 무사 사회의 중상층에 진입한 것이다. 시도 잘 지어 문집이 남았고, 다도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 사람이 이 시리즈에 들어오는 이유는 출세가 아니라 이름이다. 그는 와키타 나오카타라는 일본 이름을 받았고 평생 그 이름으로 살았다. 그런데 그가 말년에 쓴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이 조선 사람이며 본명이 김여철이라고 밝혔다.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어떻게 잡혀 왔는지, 누가 자기를 키웠는지를 적었다.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60년을 산 사람이 죽기 전에 남긴 문서의 첫머리가 나는 조선 사람이다였던 것이다.

그 자서전은 후손들의 집에 조용히 보관됐다. 와키타 가문은 대대로 가가번의 가신으로 이어졌고, 그들이 조선 관리의 후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문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3부의 다른 피랍인들과 비교하면 김여철의 자리가 보인다. 강항은 돌아왔고, 이삼평과 심당길은 돌아가지 않았으며, 김여철은 돌아갈 나이가 아니었다. 일곱 살에 끌려온 아이에게 조선은 기억이 아니라 전해 들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마지막에 그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적었다. 이 시리즈에서 경계를 가장 어린 나이에 넘은 사람이, 경계 이쪽에 자기 이름을 남기는 데 가장 오래 걸린 사람이기도 하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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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