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평 — 조선의 천민, 일본 도자기의 신이 되다

1616 · 아리타 도잔신사

일본 규슈 아리타의 언덕에 신사가 하나 있다. 도잔신사, 도자기 산의 신사라는 뜻이다. 그 신사가 모시는 신 가운데 하나가 조선인 도공 이삼평이다. 해마다 봄이면 마을 사람들이 그를 기리는 축제를 연다. 4백 년 전 조선에서라면 이름조차 남지 않았을 사람이다.

이삼평이 조선에서 누구였는지는 거의 모른다. 충청도 금강 근처 출신으로 짐작하고, 그래서 일본에서는 가나가에라는 성을 썼다고 한다 — 금강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다. 정유재란 때 사가의 영주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군대에 붙잡혀 끌려갔다. 나이도, 가족도, 조선에서의 삶도 기록이 없다. 조선에서 도공은 천민이었고, 천민의 삶은 적히지 않았다.

일본에서 그의 삶은 흙을 찾는 일로 시작됐다. 도자기, 그중에서도 흰 자기를 만들려면 고령토라는 특별한 흙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에는 그것을 찾아낼 사람이 없었다. 이삼평은 사가 일대의 산을 뒤졌고, 1616년 아리타의 이즈미야마에서 마침내 그 흙을 찾아냈다. 그리고 가마를 열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백자가 구워진 순간이다.

그 다음 이야기는 일본 도자기의 역사 그 자체다. 아리타에서 나온 자기는 이마리 항구를 통해 유럽으로 팔려 나갔고, 17세기 유럽의 왕과 귀족들은 이 동양의 흰 그릇에 열광했다. 독일 마이센 자기가 이것을 흉내 내려다 태어났을 정도다. 아리타의 초기 가마 주변에 조선인 마을이 형성됐고, 마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조선 사람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삼평은 그 마을의 우두머리로 살다 1655년에 세상을 떠났다.

신이 된 것은 그가 죽고 한참 뒤의 일이다. 1917년, 아리타 도자기 3백 년을 기념하며 마을 사람들이 도조 이삼평비를 세웠다. 도자기의 조상이라는 뜻이다. 신사에는 이미 그의 이름이 신으로 올라 있었다. 조선의 천민이 일본의 신이 된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신분의 낙차가 가장 큰 사람은 기황후지만, 신분의 종류 자체가 바뀐 사람은 이삼평뿐이다.

다만 여기서도 한 겹을 더 봐야 한다. 이삼평이 신이 된 것은 그가 훌륭해서만이 아니라, 아리타가 자기 역사의 기원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의 흔적을 지우고 일본식 성으로 바꾸게 한 것도, 그를 신으로 모신 것도 같은 마을이다. 경계를 넘은 사람은 그 사회가 원하는 형태로 기억되기 쉽다 — 필요할 때는 조상이 되고, 불편할 때는 지워진다.

그런데 이삼평은 조선에서도 뒤늦게 조상이 됐다. 1990년 공주에 그를 기리는 비가 섰고, 지금은 아리타와 공주가 자매 도시다. 4백 년 만에 양쪽 모두가 그를 자기 사람이라 부르는 셈인데, 정작 살아 있을 때 그를 자기 사람으로 대해 준 나라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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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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