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의 첫 사람은 두 번 경계를 넘었다. 한 번은 도망치느라, 한 번은 돌아오느라. 그리고 두 번 다 조선은 그를 온전히 받아 주지 않았다.
서재필은 열여덟에 과거에 급제한 수재였다. 김옥균을 따라 일본의 군사학교에 다녀온 뒤 스무 살에 갑신정변에 뛰어들었다. 정변은 사흘 만에 끝났고, 그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달아났다. 남은 가족은 조선의 법대로 처리됐다. 부모와 형은 죽고,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두 살 아들은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굶어 죽었다. 스무 살 청년이 미국 땅에 내렸을 때, 그에게는 나라도 가족도 이름도 없었다.
그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했다. 후원자를 만나 대학에 들어갔고, 의대를 졸업해 1892년 한국인 최초의 서양 의사가 됐다. 그보다 앞서 미국 시민권도 얻었다. 이름은 필립 제이슨. 서재필을 거꾸로 읽은 것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인물들처럼 개명은 그에게도 경계 넘기의 흔적이었다.
갑오개혁으로 역적의 죄가 풀리자 그는 돌아왔다. 1896년, 그가 만든 것이 독립신문이다. 순 한글로, 띄어쓰기를 해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이다. 그리고 독립협회를 세워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의 대중 집회를 열었다. 종로 거리에 백성이 모여 나라 일을 토론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청나라 사신을 맞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 것도 그였다.
그런데 조선 조정은 미국 시민 필립 제이슨을 불편해했다. 그는 조선 관리가 아니라 정부에 고용된 외국인 고문의 신분으로 일하고 있었고, 그가 키운 여론은 곧 정부를 향했다. 2년 만에 정부는 그를 내보냈다. 그리고 그가 떠난 해에 독립협회도 해산됐다. 두 번째 경계 넘기는 추방으로 끝났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의사와 사업가로 살았다.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필라델피아에서 한인 대회를 열고, 영문 잡지를 내고, 미국 정치인들을 찾아다니며 조선 독립을 호소했다. 그 일에 사업으로 번 돈을 다 썼다. 해방 뒤 여든이 넘은 나이로 미군정의 고문이 되어 세 번째로 돌아왔지만, 정치판은 그를 대통령 후보로 부르다가 곧 밀어냈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갔고, 1951년 전쟁 중인 조국의 소식을 들으며 그곳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유해가 한국 땅에 묻힌 것은 그로부터 43년 뒤다. 살아서 세 번 들어오고 세 번 나간 사람이, 죽어서야 머물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