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 마카오에서 돌아온 스물다섯의 신부

1846 9월 16일 · 서울 새남터

이 시리즈 3부의 마지막 사람은 열다섯에 나갔다가 스물넷에 돌아와, 스물다섯에 죽었다. 나간 이유도 죽은 이유도 하나였다. 조선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했기 때문이다.

김대건은 충청도 솔뫼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가 신앙 때문에 죽었고, 아버지도 훗날 같은 이유로 죽는다. 조선에서 천주교는 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사학이었고, 신자는 잡히면 죽었다. 이 집안 아이에게 조선 안의 길은 애초에 없었다.

열다섯 되던 해, 몰래 들어와 있던 프랑스 신부가 그를 신학생으로 뽑았다. 조선 사람 신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소년은 다른 두 소년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 만주를 지나 중국 대륙을 걸어서 종단해 마카오에 도착했다. 반년이 걸렸다. 마카오에서 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와 신학을 배웠고,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유럽의 학문을 하는 조선 청년이 됐다. 이 시리즈로 치면 최치원의 당, 강항의 일본이 그에게는 마카오였던 셈이다.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국경은 막혀 있었고, 그는 여러 차례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에서 되돌아서야 했다. 그 사이에 기해년의 박해로 자기를 가르친 신부들이 모두 죽고, 아버지도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1845년, 그는 상하이에서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작은 목선에 신자 열한 명을 태우고 서해를 건너 돌아왔다. 풍랑에 밀려 제주도에 닿았다가 다시 올라와 강경에 상륙했다. 조선을 떠난 지 9년 만이었다.

그가 조선에서 신부로 산 시간은 1년이 채 안 된다. 그 1년을 그는 다음 사람들이 들어올 길을 찾는 데 썼다. 서해의 섬들을 돌며 중국 어선과 접선할 바닷길을 살폈고, 그러다 황해도 순위도에서 붙잡혔다. 심문에서 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하는 것, 서양의 지리를 아는 것 때문에 관리들의 흥미를 끌었다. 세계 지도를 그려 보라는 요청까지 받았다고 한다. 조선에서 가장 넓은 세계를 본 젊은이가, 그 세계를 본 죄로 심문받고 있었던 것이다.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그는 목이 잘렸다. 스물다섯. 죽기 전에 신자들에게 남긴 편지의 마지막이 이렇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잠시 헤어지는 것뿐이니, 부디 서로 사랑하고 인내하라.

이 시리즈의 문법에서 그는 유독 짧게 산 사람이다. 밖에서 정상에 오를 시간도, 안에서 잊힐 시간도 없이 끝났다. 그런데 결말의 구조는 같다. 나가서 얻어 온 것 때문에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나라가 나중에 그를 다시 부른다는 것. 그가 죽은 지 140년 뒤 교황이 서울에 와서 그를 성인으로 선포했고, 지금 새남터에는 그의 이름을 딴 성당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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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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