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 사흘 천하

1884년 12월 4일 · 한성 (우정총국)

임오군란 이후 청의 간섭이 심해지자, 김옥균·박영효·서광범·서재필 등 급진 개화파는 청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주적 근대 국가를 세우려 했다. 1884년 12월 4일, 이들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틈타 정변을 일으키고 새 정부를 세워 신분제 폐지·조세 개혁 등을 담은 14개조 정령을 내걸었다. 그러나 의지했던 일본의 지원은 약했고, 명성황후의 요청으로 출동한 청군 앞에 정변은 사흘 만에 무너졌다. 김옥균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위로부터의 급진 개혁이 외세에 기댄 채 좌절되면서, 개화의 길은 더욱 험난해졌다. 이들은 위로부터의 급진적 개화를 단숨에 밀어붙이려 했으나, 일본에 의존한 개혁은 그 자체로 한계를 안고 있었다. 또한 백성과 보수 세력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한 급진 노선은 거센 정치적 반발에 부딪혔다.

왜 일어났나

김옥균·박영효·홍영식 등 급진 개화파는 청의 간섭과 민씨 정권 아래서는 일본식 근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1884년 청이 베트남 문제로 프랑스와 싸우며 조선 주둔군 절반을 빼내자 기회로 여겼고, 일본 공사의 지원 약속을 받았다. 12월 4일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에서 정변을 일으켜 민씨 대신들을 죽이고 새 정부를 세웠다.

무엇이 달라졌나

사흘 만에 청군 1,500명이 개입해 정변은 무너졌다.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해 뒤에 상하이에서 암살되었고, 남은 가족은 처형되었다. 청의 간섭은 더 심해졌고 일본은 톈진조약으로 청과 대등한 파병권을 얻어 10년 뒤 청일전쟁의 발판을 만들었다. 급진 개화파가 내건 14개 조의 개혁안은 갑오개혁으로 일부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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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개항기·일제강점기 지도(1876~1945)의 사건입니다 — 개항기·일제강점기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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