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불교 성지로 꼽히는 산이 넷 있다. 그중 하나인 안후이의 구화산은 지장보살의 도량이다. 해마다 수백만 명이 그 산에 올라 지장보살에게 절을 한다. 그런데 그들이 절하는 지장보살은 사람이었고, 신라 사람이었고, 왕자였다고 전한다.
김교각은 신라 왕족으로, 스물넷에 바다를 건너 당에 왔다고 한다. 어느 왕의 아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왕위 계승에서 밀려났다는 설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 시리즈의 문법 — 안에서 길이 막힌 사람 — 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그는 안후이의 구화산으로 들어가 동굴에서 수행을 시작했다. 흰 흙을 쌀에 섞어 먹으며 굶주림을 견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산에서 그는 75년을 살았다. 신라에서 가져온 볍씨와 차 씨앗을 심어 산중에 논과 차밭을 만들었고, 그 소문을 듣고 신라 승려들이 바다를 건너 찾아왔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이 이국의 승려를 처음엔 이상하게 여겼고, 나중엔 시주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절을 지어 주었다. 화성사라는 그 절이 지금도 구화산에 있다.
그는 아흔아홉에 앉은 채로 입적했다. 제자들이 시신을 항아리에 넣어 두었는데, 3년 뒤 열어 보니 얼굴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살아서 지장보살처럼 살았고 죽어서도 썩지 않은 승려 — 사람들은 그를 지장보살이 몸을 빌려 온 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그의 시신은 탑에 봉안됐고, 그 자리 위에 지금의 육신보전이 서 있다. 구화산이 지장보살의 산이 된 것은 이 신라 사람 때문이다.
이 시리즈에 그가 들어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경계를 넘은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신앙의 대상이 된 사람이라는 것. 이삼평은 마을의 신이 됐지만 김교각은 한 종교의 보살이 됐다. 다른 하나는 그를 기억하는 쪽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그는 1,200년 동안 한 번도 잊힌 적이 없는 성인이다. 신라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거의 불리지 않았다. 나간 나라에서 신이 되고 태어난 나라에서 잊힌 것 — 이정기와 같은 구조가 승려에게서도 반복된다.
덧붙여 둘 것이 있다. 그가 왕자였다는 것, 시신이 썩지 않았다는 것, 신라의 볍씨를 심었다는 것 —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후대 중국 측 기록과 전설에 기대어 있다. 신라 쪽 사료에는 그가 없다. 이 시리즈는 전설을 사실로 적지 않으되, 1,200년 동안 수백만 명이 절해 온 전설이라는 사실은 그대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