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의 패턴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안에서 아무것도 아니던 사람이 밖에서 나라도 못 한 일을 해내고, 돌아와서 벌을 받는다. 그 문장을 가장 정직하게 살아 낸 사람이 동래의 어부 안용복이다.
그는 수군에서 노를 젓던 사람이었다. 신분으로 치면 바닥이다. 다만 부산의 왜관을 드나들며 일본말을 익혔고,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1693년 봄, 울릉도에서 고기를 잡던 안용복 일행은 일본 어부들과 마주쳤다. 울릉도는 조선이 백성을 비워 둔 섬이었고, 그 빈틈을 일본 어부들이 자기 어장처럼 쓰고 있었다. 실랑이 끝에 안용복은 일본으로 끌려갔다.
여기서 보통 사람이면 이야기가 끝난다. 안용복은 끌려간 오키에서, 돗토리에서, 자기를 잡아 온 사람들을 상대로 따졌다. 울릉도는 조선 땅인데 왜 조선 사람을 잡아 왔느냐. 그 말이 막부까지 올라갔고, 그는 울릉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취지의 문서를 받아 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쓰시마에서 그 문서를 빼앗겼고, 조선에 도착하자 국경을 함부로 넘었다는 죄로 곤장을 맞았다.
3년 뒤 그는 다시 갔다. 이번에는 스스로. 관복을 빌려 입고 자신을 울릉도와 자산도(독도)의 감세관이라 칭한 뒤, 열 명 남짓을 데리고 돗토리로 건너가 다시 담판을 벌였다. 관직 사칭이다. 그런데 그 사칭이 통했다. 이 무렵 막부는 쓰시마의 보고를 검토한 끝에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출어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안용복의 담판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쳤는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한 어부가 두 나라 사이의 국경 문제를 외교의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것만은 분명하다.
돌아온 그를 조정은 붙잡았다. 죄목은 국경을 넘은 것과 관리를 사칭한 것. 사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격론 끝에 목숨은 건져 유배로 낮춰졌다. 그 뒤로 안용복의 행적은 기록에 없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아무도 적지 않았다. 나라가 비워 둔 섬을 지키러 두 번 바다를 건넌 사람의 마지막이, 나라의 기록에서 비어 있는 것이다.
조선의 관점에서 보면 조정의 처분은 이해할 수 있다. 백성이 제멋대로 국경을 넘어 외교 문제를 일으키면 나라가 서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논리가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벽이다. 능력이 아니라 자리를 보는 나라에서, 자리가 없는 사람의 능력은 공이 아니라 죄가 된다. 장보고의 딸이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이유와 안용복이 유배를 간 이유는 결국 같은 문장이다.
안용복이 다시 불려 나온 것은 그로부터 3백 년 뒤, 독도가 두 나라의 문제로 떠오르면서다. 지금 그는 독도 관련 자료 어디에나 등장하는 이름이 됐다. 살아서는 죄인이었던 사람을 나라가 뒤늦게 증인으로 부르는 것 — 이 시리즈에서 여러 번 본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