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화유산 순례 ⑤ 발해

오늘날 남아있는 유적들

고구려 유민과 말갈이 함께 세운 다종족 국가, 그 흔적을 찾아가는 길 — 다섯 나라 중 가장 멀고, 가장 가기 어려운 곳들

타임라인 (6개 지점)

  1. 동모산(구국) — 발해가 시작된 곳 (698 · 돈화시(지린성))

    고구려 출신 대조영이 말갈족과 함께 당의 통제에서 벗어나 세운 발해의 첫 수도다. 이후 학자들은 인근 육정산 고분군에서 정혜공주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이 일대(오늘날 돈화시)가 실제로 발해 건국 초기의 중심지였음을 확정할 수 있었다.

  2. 육정산 고분군 — 정혜공주묘 (780 · 돈화시(지린성))

    문왕의 둘째 딸 정혜공주가 묻힌 무덤으로, 1949년 발굴됐다. 고구려 전통 양식의 돌방무덤에 당나라식 돌사자를 함께 배치한 구조가 확인돼, 발해가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면서도 당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725자에 이르는 묘지석은 발해인이 직접 남긴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 가운데 하나로, 사료가 부족한 발해사 연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다만 고구려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점 때문에 접근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어, 직접 답사하려는 이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곳이다.

  3. 용두산 고분군 — 정효공주묘 (792 · 화룡시(지린성))

    문왕의 넷째 딸 정효공주가 묻힌 무덤으로, 1980년대 발굴됐다. 언니 정혜공주의 묘지석과 문장이 거의 동일해, 발해 왕실에서 묘비문 초안을 미리 마련해뒀다가 필요할 때 완성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인근의 서고성(중경현덕부 터)이 발해의 두 번째 수도였음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이기도 하다.

  4. 상경용천부 — 해동성국의 수도 (818 · 닝안시(헤이룽장성))

    발해가 가장 오랫동안 도읍으로 삼았던 마지막 수도로, 9세기 선왕 대에는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번영했다. 당의 장안성을 본뜬 계획도시 구조가 확인돼, 발해가 독자적인 국가 체제를 갖춘 동아시아의 어엿한 일원이었음을 보여준다.

  5. 발해 멸망 — 마지막 수도가 함락되다 (926 · 상경성(닝안시))

    내부 권력 다툼으로 국력이 약해진 발해는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의 침공을 받아 926년 멸망했다. 200년 넘게 만주 동부에서 번영했던 다종족 국가는 이렇게 무너졌고, 유민 상당수는 고려로 남하해 흡수됐다.

  6. 발해 유물은 어디서 볼 수 있나 (2026 · 국립중앙박물관(서울))

    발해 유적 대부분이 중국·러시아 접경 지역에 있어, 한국에서 발해를 만날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발해실에 소량의 기와·토기가 전시돼 있지만, 정혜·정효공주묘의 묘지석 원본이나 상경용천부의 실물은 각각 중국 지린성박물관과 현지에 있어 국내에서는 볼 수 없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모두 국내에서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것과 달리, 발해는 이 다섯 나라 가운데 가장 멀리 있는 나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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