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광 — 1,300년 동안 후손이 지키는 고구려 유민의 신사

716 · 사이타마 히다카 고마신사

도쿄에서 전철로 한 시간, 사이타마의 히다카라는 조용한 동네에 신사가 하나 있다. 고마신사, 고려신사라고 읽는다.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다. 이 신사가 모시는 신은 고구려 사람이고, 그 신을 모시는 궁사는 지금도 그의 후손이다. 예순 번째 대다.

고약광은 고구려의 사신이었다. 나라가 망하기 두 해 전, 그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그리고 고구려가 무너졌다. 돌아갈 나라가 없어진 사신은 일본에 남았다. 일본 조정은 그에게 왕(고키시)이라는 성을 내렸는데, 이는 망한 나라의 왕족급 유민에게 주던 예우였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716년, 일본 조정은 각지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 유민 1,799명을 무사시노 벌판, 지금의 사이타마 일대로 모아 새 고을을 세우게 했다. 고마군, 고구려 고을이라는 뜻이다. 그 고을의 우두머리로 세워진 사람이 노인이 된 고약광이었다. 유민들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논을 만들고 길을 냈다. 고구려 사람들이 일본 땅에 고구려 마을을 세운 것이다.

그가 죽자 마을 사람들은 그를 신으로 모셨다. 그것이 고마신사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신사를 지켰다. 이름은 고마 씨로 바뀌었고, 세월이 흐르며 그들은 일본 사람이 됐다. 그러나 신사의 족보는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헤이안, 가마쿠라, 에도, 메이지를 지나 지금까지 — 고약광에서 시작하는 계보가 60대째 이어진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이다.

이 시리즈의 3부에 나오는 심수관 가문이 4백 년 동안 조선 이름을 지켰다면, 고약광의 후손은 1,300년 동안 고구려 조상을 지켰다. 이름은 바뀌었어도 신사의 신은 바뀌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쪽의 태도다. 고마신사는 일본에서 출세의 신사로 이름이 높아, 참배한 뒤 총리가 된 정치인이 여럿이라는 이야기가 붙어 있다. 고구려 사람을 모시는 신사에 일본의 정치인들이 출세를 빌러 오는 것이다.

고약광에 대해 남은 기록은 많지 않다. 일본서기의 사신 기사 한 줄, 속일본기의 고마군 설치 기사 한 줄. 그의 생애 대부분은 빈칸이다. 그런데 그 빈칸 위에 1,300년짜리 신사가 서 있다. 이 시리즈에서 개인의 기록이 가장 적고 유산의 기록이 가장 긴 사람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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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