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서 가장 낯설고, 어쩌면 가장 큰 인물이다. 앞의 사람들이 제국의 사다리를 올랐다면, 이 사람은 제국 안에 자기 나라를 만들었다.
본명은 이회옥. 고구려 유민들이 모여 살던 영주(지금의 랴오닝성 차오양)에서 태어났다. 안녹산의 난으로 제국이 뒤집히던 시절, 그는 평로군이라는 동북 변방 군단의 장교였다. 반란의 혼란 속에서 평로군은 근거지를 잃고 바다를 건너 산둥반도로 옮겨 갔는데, 이 유랑 군단 안에서 이회옥은 병사들의 신망을 얻어 갔다.
765년, 병사들은 상관을 몰아내고 이회옥을 우두머리로 추대했다. 쿠데타로 세워진 절도사를 당 조정은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안녹산의 난 이후 조정에는 지방을 누를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정은 그에게 정기(正己)라는 이름을 내렸다. 자기를 바르게 하라는 뜻이다. 훗날의 행보를 보면 꽤 얄궂은 작명이다.
이정기는 산둥반도 일대 열다섯 주를 손에 넣었다. 인구 수백만, 병력 10만. 세금은 조정에 보내지 않았고, 관리는 스스로 임명했으며, 자리는 아들에게 물려줬다. 이름만 당의 절도사일 뿐 사실상 독립 왕국이었다. 당시 당 안에는 이런 반독립 군벌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이정기의 치청은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한 축에 들었다.
부의 비결은 자리였다. 산둥은 소금이 나는 땅이고, 대운하가 지나는 길목이며, 바다 건너 신라·발해와 마주 보는 항구를 가졌다. 이정기는 이 셋을 모두 쥐었다. 특히 등주 항구를 통한 발해와의 교역이 컸다. 발해의 명마가 이정기의 군단으로, 산둥의 물자가 발해로 흘렀다. 고구려 유민이 세운 군벌과 고구려 유민이 세운 나라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거래한 셈이니, 역사의 우연치고는 절묘하다.
781년, 이정기는 다른 군벌들과 손잡고 조정과의 전면 대결을 준비하던 중에 병으로 급사한다. 그러나 왕국은 끝나지 않았다. 아들 이납이 잇고, 그다음 이사고, 그다음 이사도까지 — 한집안이 4대 55년 동안 산둥을 다스렸다. 이납은 한때 아예 나라 이름을 제(齊)라 하고 왕을 칭하기까지 했다.
끝은 819년에 왔다. 힘을 회복한 당 헌종이 대군을 보내 치청을 무너뜨렸고, 이사도는 부하의 손에 목이 잘렸다. 일가는 몰살에 가깝게 지워졌다. 그리고 이 토벌전에 동원된 부대 가운데 서주 무령군이 있었다 — 그 무령군의 젊은 장교 중에 신라에서 건너온 궁복이라는 사내가 있었으니, 다음 편의 주인공 장보고다. 고구려 유민의 왕국이 무너지는 전장에 신라 출신 용병이 서 있었던 것이다. 경계를 넘은 사람들의 길은 이렇게 서로 엇갈리기도 했다.
이정기 일가는 한국사 개설서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당나라 안의 일이니 중국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사 쪽에서는 이민족 반란 세력으로 다뤄질 뿐이다. 두 역사 모두에게 곁가지인 사람들 — 경계를 넘은 사람들이 기록에서마저 경계에 서게 되는 사정을, 이 가문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