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백제는 말이 비슷해 서로 통했고, 신라는 조금 달랐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이 말은 근거 없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중국 역사책들이 남긴 짧은 문장들이 그 뿌리입니다.
『삼국지』 동이전(3세기)은 고구려를 두고 「옛 말에 부여의 갈래라 하는데, 말과 여러 일이 부여와 많이 같다」고 했습니다. 동옥저는 「말이 고구려와 대체로 같고 때때로 조금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오면 「진한은 말이 마한과 같지 않다」고 적었습니다. 이런 문장들을 바탕으로 국어학자 이기문은 부여·고구려 쪽 말과 삼한 쪽 말, 두 갈래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백제는 그 두 갈래가 겹친 나라였습니다. 『양서』 백제전(7세기)은 「지금 말과 옷차림이 고구려와 대략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서』 백제전에는 더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왕의 성은 부여씨이고 어라하(於羅瑕)라 부르는데, 백성은 건길지(鞬吉支)라 부른다. 모두 중국 말로 왕이라는 뜻이다.」 같은 임금을 지배층과 백성이 다른 말로 불렀습니다. 부여에서 내려온 지배층의 말과, 마한 땅 백성의 말이 한 나라 안에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신라에 대해서는 『양서』 신라전의 한 문장이 자주 인용됩니다. 「나라가 작아 스스로 사신을 보내지 못했다. 보통 2년(521)에 처음으로 백제를 따라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글자가 없어 나무에 새겨 약속하고, 말은 백제를 거쳐야 통한다.」 신라가 중국어를 못했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정확히는 신라가 중국과 통할 통역을 스스로 갖추지 못해 백제 사람을 거쳤다는 뜻입니다. 신라 말이 고구려·백제 말과 전혀 달랐다는 뜻까지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 나라 사람이 만나면 서로 알아들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좋은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제주 어르신의 말은 육지 사람이 알아듣기 어렵지만, 낱말이 달라도 앞뒤 맥락으로 뜻은 짐작됩니다. 삼국의 말도 그 정도였으리라는 것이 여러 학자의 짐작입니다. 다만 제주어 정도였는지, 그보다 멀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세 나라 말로 된 긴 글이 한 편도 남지 않아서, 우리는 지명과 인명, 관직 이름 같은 조각으로만 짐작합니다.
그 조각을 가장 많이 품은 책이 『삼국사기』 지리지입니다. 신라가 바꾸기 전의 옛 지명을 적어 두었는데, 어떤 땅이름은 한자 뜻으로 적은 것과 소리로 적은 것이 나란히 남아 있습니다. 거기서 옛말의 낱말을 건져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바다를 건너며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