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왜(倭)로 갔습니다. 백제의 학자와 기술자, 고구려의 승려와 화가, 나라가 무너진 뒤 떠난 유민들이 일본에 글과 절과 기술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도 따라갔을 것이고, 옛 일본의 기록에서 오히려 삼국의 말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학자들이 그렇게 합니다.
가장 유명한 예가 「코니키시」입니다. 720년에 엮은 『일본서기』는 백제 왕(王)을 일본 읽는 법으로 「코니키시」라 읽었습니다. 앞 편에서 본 백제 백성의 말 「건길지(鞬吉支)」와 소리가 맞아떨어집니다. 백제 사람들이 쓰던 말이 일본 쪽 읽는 법에 굳어 남은 것입니다.
문화와 함께 건너간 낱말도 있습니다. 일본어로 절을 「테라」라 하는데, 우리 옛말 「뎔(절)」에서 간 것으로 봅니다. 옛 일본어의 「와타(바다)」를 우리말 「바다」와 이어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반대 방향의 증거도 있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한강 유역, 곧 고구려가 한때 차지했던 땅의 옛 지명이 한자 뜻과 소리 두 가지로 적혀 있습니다. 삼현현(三峴縣)을 밀파혜(密波兮)라고도 했으니 셋이 「밀」, 오곡군(五谷郡)을 우차탄홀(于次呑忽)이라고도 했으니 다섯이 「우차」, 칠중현(七重縣)을 난은별(難隱別)이라고도 했으니 일곱이 「난은」, 십곡현(十谷縣)을 덕돈홀(德頓忽)이라고도 했으니 열이 「덕」입니다. 이 넷은 일본어의 셋(미), 다섯(이쓰), 일곱(나나), 열(토)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이것을 두고 「고구려 말과 일본어가 가까웠다」는 가설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 그 지명들은 고구려 본토가 아니라 한강 유역에서 나왔습니다. 고구려가 나중에 차지한 땅이니, 고구려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 전부터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의 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한반도 중부에 일본어와 가까운 말을 쓰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말이 지명에 남았다」고 보는 학자가 많습니다.
둘. 빌려 간 말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은 다릅니다. 테라처럼 문화와 함께 건너간 말이 많다는 것은 교류가 깊었다는 증거이지, 한국어와 일본어가 한 뿌리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두 말이 같은 뿌리인지는 따로 있는 오래된 논쟁이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뿌리라고 말하려면 우연히 닮은 낱말 몇 개가 아니라, 수많은 낱말에서 소리가 규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니 일본의 기록은 삼국의 말을 비춰 보는 거울 가운데 하나가 맞습니다. 다만 그 거울에는 그 땅에 원래 살던 사람들의 말, 빌려 간 말, 일본 쪽 소리로 바뀐 말이 겹쳐 비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