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평구 — 하늘을 나는 수레를 만들었다는 사람

1592 10월 · 진주성 · 김제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하늘을 나는 수레가 쓰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거(飛車)라 부른다.

어디에 적혀 있나

이 이야기가 실린 것은 조선 후기 학자들의 저술이다.

신경준의 글에 비거에 대한 언급이 있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이규경이 적은 바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영남의 어느 고립된 성에 비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있어 성주를 태우고 삼십 리를 날아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들은 다른 이야기로, 원주 사람이 비거를 만들었다는 말도 함께 적었다.

이규경은 19세기 사람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 250년 뒤다.

정평구라는 이름

이 비거를 만든 사람이 정평구라는 이야기는 더 뒤에 붙었다.

전라도 김제 출신이며 진주성에서 활동했다는 전승이 지역에 전한다.

다만 당대 기록에 그의 이름은 없다. 선조실록에도, 진주성 전투를 다룬 다른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의 이야기는 19세기의 짧은 기록과 지역 전승이 합쳐진 것이다.

가능한 일이었나

이 문제는 종종 논의된다.

17세기 이전 동아시아에 연이나 활공 장치에 대한 지식은 있었다. 큰 연에 사람을 매다는 시도는 여러 문화권에 기록이 있다.

다만 사람을 태우고 삼십 리를 날았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활공만으로 그 거리를 가려면 상당한 높이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검증할 방법 자체가 없다.

이 이야기의 자리

이 편을 이 사전에 넣는 이유는 비거가 실재했는지를 판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이야기는 사료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19세기 학자가 들은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그 기록에는 사람 이름이 없었다. 뒤에 지역 전승에서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조선 시대에 비행기가 있었다는 형태로 이야기된다.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간 것이다.

앞서 본 양만춘의 이름, 강감찬의 별, 문익점의 붓두껍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붙었다.

다만 그 이야기들이 자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역사에 그런 것이 있었기를 바란다.

그 바람 자체는 지어낸 것이 아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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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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