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 잊혀가던 주몽을 다시 불러낸 사람

1193 4월 · 개경 · 강화

1168년에 태어나 1241년에 죽었다. 고려 최대의 문인으로 꼽힌다.

술과 시와 거문고를 좋아해 스스로를 세 가지에 혹한 선생이라 불렀다.

동명왕편

그가 스물여섯이던 1193년에 쓴 것이 「동명왕편」이다. 주몽의 건국 이야기를 긴 서사시로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서문에서 그는 자기가 왜 이 글을 썼는지 밝혔다.

처음 동명왕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허황되다고 여겨 믿지 않았다. 그런데 『구삼국사』를 얻어 동명왕본기를 읽어보니 그 신이함이 세상에 전하는 것보다 더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어 귀신이나 허깨비 같다고 여겼는데, 세 번을 거듭 읽고 나서 점점 그 근원에 이르니 이것은 허깨비가 아니라 성스러움이며, 귀신이 아니라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취지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나라임을 천하에 알리고자 이 글을 쓴다고.

사라진 책

여기서 그가 인용한 『구삼국사』는 지금 전하지 않는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이전에 있던 역사서로 보는데, 삼국사기가 나온 뒤 사라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동명왕편」은 특별한 위치에 있다. 사라진 책의 내용을 부분적으로나마 전하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주몽 기사는 비교적 간략하다. 「동명왕편」에는 훨씬 풍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유화가 강가에서 해모수를 만나는 장면, 주몽이 활을 쏘는 장면, 송양왕과 겨루는 장면 등이 자세하다.

왜 그때였나

1193년이라는 시점이 중요하다.

무신정변이 일어난 지 20여 년, 나라 안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북쪽에서는 금이 강성했다.

삼국사기가 신라 중심으로 정리한 뒤, 고구려의 건국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규보가 그것을 다시 끌어올린 것이다.

이 흐름은 90년 뒤 일연의 삼국유사로 이어진다. 몽골 지배 아래에서 단군을 첫머리에 올린 그 책과 같은 방향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시작을 다시 이야기한다.

다른 얼굴

다만 이규보를 민족적 자부심의 문인으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다.

그는 최씨 무신정권에서 벼슬을 살았다. 최충헌과 최우를 위한 글을 썼다. 그 시대 권력의 문서를 담당한 사람이었다.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강화도로 옮겨 간 조정에서 몽골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그가 지었다.

그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는 농민의 고통을 노래한 시도 있고, 권력자를 위한 글도 있다.

한 사람 안에 그 둘이 함께 있다.

술을 의인화해 쓴 「국선생전」 같은 글도 남겼다. 술이 벼슬을 하고 죄를 짓고 물러나는 이야기다.

그는 1241년 강화에서 죽었다. 그해에 그의 문집이 아들에 의해 정리되어 나왔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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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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