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 마지막 기록이 통째로 사라진 사람

1442 3월 · 한양 · 동래

세종 때의 과학을 이야기하면 반드시 나오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언제 태어났는지도,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다.

출신

세종실록은 그의 내력을 짧게 적었다. 아버지는 원나라 소주와 항주 사람이고 어머니는 기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외국에서 온 사람이고 어머니가 천인이었다. 그 자신은 동래현의 관노였다.

조선에서 이보다 낮은 출발점을 찾기 어렵다.

올라가는 길

그의 재주가 알려져 태종 때 이미 서울로 불려 올라왔다. 세종은 그를 명나라에 보내 천문 기기를 보고 오게 했다.

1423년, 세종이 그에게 상의원 별좌라는 벼슬을 주려 했다. 노비 신분을 벗기는 일이었다.

신하들이 반대했다. 세종이 황희 등에게 다시 물었고,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왕이 신하들과 논의해가며 한 사람의 신분을 풀어준 기록이 실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만든 것

자격루가 대표작이다. 물의 힘으로 시각을 알리는 자동 시계다. 정해진 시각이 되면 인형이 나와 종과 북과 징을 쳤다.

세종실록은 이것을 두고 그 정교함이 귀신같다는 취지로 적었다.

그밖에 해시계인 앙부일구, 천문 관측 기구인 혼천의와 간의, 옥루라는 정교한 천문시계를 만들었다. 금속활자 갑인자 주조에도 참여했다.

측우기는 오랫동안 그의 발명으로 알려져 왔으나, 실록의 서술로 보면 세자였던 문종이 주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1442년

그해에 임금이 탈 가마가 부서지는 일이 있었다. 장영실이 그 제작을 감독한 책임을 물어 국문을 받았다.

곤장 80대와 파직이 내려졌다. 원래 100대였는데 20대를 감했다.

그리고 그 뒤로 그의 이름이 실록에서 사라진다.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조선의 관료가 죽으면 실록에 졸기가 실린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짧게 평가하는 기록이다.

장영실에게는 졸기가 없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세종이 그토록 아꼈던 사람이, 가마 사건 이후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 공백을 두고 여러 추측이 있었다. 정치적 사건에 휘말렸다는 것, 신분 때문에 기록될 자격이 없어졌다는 것, 스스로 물러났다는 것.

어느 것도 확인할 자료가 없다.

조선의 과학을 통째로 바꾼 사람의 마지막이,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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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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