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를 여기까지 읽었다면 한 이름이 계속 나온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비형랑도, 처용도, 김현과 호랑이 처녀도, 거타지도, 만파식적도, 김수로와 허황옥도 삼국유사에서 왔다. 이 사전에 실린 이야기의 절반 가까이가 한 사람이 남긴 책에서 나온다.
그 사람을 다루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인가
1206년 경산에서 태아났다. 아홉 살에 절에 맡겨졌고 열네 살에 승려가 되었다.
스물두 살에 승과에 수석으로 급제했다. 그 뒤 여러 절을 옮겨 다니며 수행했고, 뒤에는 나라에서 가장 높은 승직인 국존에까지 올랐다.
그러니까 그는 산속에 숨어 산 사람이 아니다. 당대 불교계의 최상층에 있었다.
어떤 시대인가
그가 산 시기가 중요하다.
그가 스물여섯이던 1231년에 몽골이 처음 쳐들어왔다. 그 뒤 30년 가까이 전쟁이 이어졌다.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고 국토는 짓밟혔다. 황룡사 9층 목탑이 불탄 것도 이때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원의 간섭이 시작됐다. 고려 왕은 원의 공주와 혼인해야 했고, 관제와 호칭이 낮춰졌다. 두 차례 일본 원정에 사람과 물자를 대야 했다.
삼국유사는 그런 시기에 쓰였다. 1281년 무렵으로 본다. 그의 나이 일흔여섯이었다.
무엇을 실었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는 흔히 정사와 야사의 차이로 설명된다. 그런데 더 정확히 보면 무엇을 남길 가치가 있다고 보았는가의 차이다.
김부식은 유교적 기준에서 나라의 흥망과 신하의 충절을 남겼다. 괴이한 이야기는 대체로 걸렀다.
일연은 그것들을 남겼다. 죽은 왕의 혼령이 낳은 아이, 귀신을 부려 다리를 놓은 소년, 호랑이가 변한 처녀, 알에서 나온 임금들.
그리고 그 첫머리에 자기 입장을 밝혀두었다. 중국의 성인들도 태어날 때 기이한 일이 있었는데 우리 삼국의 시조가 신이한 데서 나온 것이 어찌 괴이하냐는 취지였다.
남의 나라 것은 성스럽고 우리 것은 황당하다고 여기는 시선에 대한 반박이다.
단군
삼국유사가 가장 크게 남긴 것은 첫 항목이다.
고조선조에 단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지금 우리가 아는 단군 신화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 이것이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내려오고, 곰이 여자가 되고, 그 사이에서 단군이 나와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
일연은 이 대목에서 『위서』와 『고기』를 인용했다고 밝혔다. 그 책들은 전하지 않는다.
몽골의 지배 아래에서 우리 역사의 시작을 중국과 같은 시기까지 끌어올려 적어둔 것이다.
혼자 한 일이 아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삼국유사가 일연 한 사람의 저작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다.
제자 무극이 뒤에 덧붙인 부분이 확인되고, 판본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편찬 과정에 여러 사람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지적된다.
또한 그가 인용한 자료 대부분이 지금 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사라진 책들을 일연의 인용을 통해서만 읽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인각사에서 어머니를 모시다 1289년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