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을지문덕과 정반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을지문덕은 기록이 너무 없어서 알 수 없고, 강감찬은 기록이 충분한데도 우리가 아는 모습과 어긋난다.
짧게 정리하면
948년에 태어나 1031년에 죽었다. 서른여섯에 과거에 갑과 장원으로 급제했다. 무과가 아니다. 고려에는 애초에 무과가 없었다.
예부시랑, 한림학사, 이부상서를 지냈다. 문서와 의례와 인사를 다루는 자리들이다.
일흔한 살에 상원수가 되어 20만 8천여 명을 지휘했다. 두 달 만에 거란군 10만을 수천으로 줄였고, 귀주에서 마무리했다. 이 사람의 전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자료실의 「세 번의 대첩」 두 번째 편에 있다.
여기서는 그 뒤에 붙은 것들만 본다.
별이 떨어졌다
그가 태어난 자리를 낙성대(落星垈)라 부른다. 별이 떨어진 터라는 뜻이다.
어느 밤 사신이 길을 가다 큰 별이 어느 집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했더니, 그 집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고려사 강감찬 열전에 없다. 조선 시대 지리지와 야담집을 통해 자세해진다.
어머니가 여우였다
더 나아간 이야기도 있다. 조선 후기 야담에 실린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여우가 변한 여자와 인연을 맺어 아이를 얻었다는 이야기, 또는 그가 여우를 꾸짖어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여러 형태로 전한다.
곰보 자국이 있는 얼굴로 태어났는데 실은 하늘의 별이 내려온 것이라 얼굴이 너무 빛나 일부러 흠집을 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사가 적은 얼굴
정작 고려사는 그의 용모를 이렇게 적었다.
몸집이 작고 얼굴이 볼품없었으며 옷은 낡고 검소해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조정에 나아가 큰일을 결단할 때는 나라의 기둥이 되었다.
작고 초라한 문관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강감찬은 대개 말 위에서 칼을 든 장수의 모습이다. 그 사이를 메운 것이 별과 여우와 곰보 자국이다.
왜 이런 이야기가 붙었을까
짐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 일흔한 살 문관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이겼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설명이 어렵다.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 앞에서 사람들은 원인을 만들어낸다. 저 사람은 원래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고. 별이 떨어졌고 하늘에서 왔다고.
앞서 양만춘 편에서 본 것과 같은 구조다. 이름이 없으면 이름을 지어주고, 설명이 안 되면 신비를 붙인다.
그가 전쟁이 끝난 뒤 한 일은 개경에 나성을 쌓자고 건의한 것이었다. 이겨놓고 방비를 말한 것이다. 나성은 1029년에 완공됐고 그는 2년 뒤 여든넷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