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숭겸 — 왕의 옷을 입고 대신 죽다

927 9월 · 공산(대구 팔공산)

927년, 견훤이 서라벌을 들이쳐 경애왕을 죽였다. 왕건이 정예 기병 오천을 이끌고 달려갔다가 돌아오는 견훤을 공산에서 맞았다.

그 싸움에서 고려군이 무너졌다. 왕건은 포위되었다.

옷을 바꿔 입다

신숭겸이 왕건에게 말했다. 신이 대왕과 얼굴이 닮았으니 옷을 바꿔 입고 대신 나가겠습니다. 대왕께서는 그 사이에 빠져나가십시오.

왕건이 거절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신숭겸은 왕건의 옷을 입고 왕이 타는 수레에 앉아 싸웠다. 김락도 함께 남았다.

후백제군은 그를 왕건으로 알고 몰려들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왕건은 그 틈에 몸을 뺐다.

머리가 없었다

뒤에 시신을 수습하러 갔을 때 신숭겸의 목이 없었다. 왕으로 알고 벤 것이다.

왕건이 그 시신을 붙잡고 통곡했다고 고려사는 적었다. 그리고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붙여 장사 지냈다.

금으로 만든 머리가 도굴을 부를까 염려해 무덤을 세 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그의 묘에는 지금도 봉분이 셋이다.

다만 봉분이 셋인 이유를 두고는 다른 설명도 있다. 부인들과 함께 묻혔다는 견해다. 어느 쪽인지 확정되지 않았다.

193년 뒤

1120년, 고려 예종이 서경에서 팔관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 허수아비 둘이 관복을 입고 나와 말을 타고 뜰을 돌았다. 왕이 이상히 여겨 물으니, 신숭겸과 김락을 기리는 것이라 했다. 두 사람이 태조를 대신해 죽은 공을 잊지 않으려고 태조 때부터 이어온 놀이라는 것이었다.

예종이 감동해 시를 지었다. 우리말 노래로도 지었는데 그것이 「도이장가」다. 두 장수를 슬퍼하는 노래라는 뜻이다.

향찰로 적힌 이 노래는 향가의 형식이 고려 중기까지 남아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다뤄진다.

죽은 사람이 이백 년 뒤 임금에게 노래를 짓게 한 셈이다.

이름이 바뀐 사람

그의 본래 이름은 능산이었다고 전한다. 신숭겸이라는 이름과 성은 왕건에게서 받은 것으로 본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전라도 곡성이라는 기록과 강원도 춘천이라는 전승이 함께 있다. 평산 신씨는 그를 시조로 삼는데, 평산이라는 본관 역시 왕건이 내린 것이라 전한다.

이름도 성도 본관도 왕에게서 받은 사람이, 왕의 옷을 입고 죽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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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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