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년, 고구려는 끝나기 직전이었다.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쳐들어와 수도 환도성을 함락시켰다. 동천왕은 남쪽으로 달아났고 위군은 계속 쫓아왔다. 죽령에 이르렀을 때 왕 곁에 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흩어지고 죽고 도망친 뒤였다.
첫 번째 사람
밀우(密友)가 왕에게 말했다. 제가 죽기를 각오하고 막을 테니 그 사이에 빠져나가시라고. 그는 결사대를 모아 뒤를 막았고, 왕은 그 틈에 몸을 뺐다.
산골짜기에 이르러 흩어진 군사를 모은 왕이 말했다. 밀우를 데려오는 자에게 후하게 상을 주겠다. 유옥구라는 사람이 나서서 되돌아가 쓰러져 있는 밀우를 찾아 업고 왔다. 왕이 무릎 위에 눕히자 한참 뒤에 깨어났다고 삼국사기는 적었다.
두 번째 사람
그래도 위군은 물러가지 않았다. 왕이 다시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동부 사람 유유(紐由)가 나섰다. 사정이 위급하니 헛되이 죽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계책이 하나 있다고 했다. 음식을 들고 위군을 찾아가 항복을 청하는 척하다가 적장을 찌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왕께서 마음껏 치실 수 있다고.
왕은 좋다고 했다.
유유는 위군 진영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 임금이 대국에 죄를 지어 바닷가로 달아났으나 이제 항복하려 하니 먼저 변변찮은 음식을 올린다고 말했다. 위나라 장수가 그 항복을 받으려 했다.
유유는 음식 그릇에 칼을 숨기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 그릇을 들다가 칼을 뽑아 적장의 가슴을 찔렀고, 그 자리에서 함께 죽었다.
지휘관을 잃은 위군은 대열이 흐트러졌다. 동천왕이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급습했고, 위군은 낙랑 방면으로 물러갔다.
남은 것
왕은 도읍을 옮기고 공을 따졌다. 밀우와 유유를 첫째로 삼아, 밀우에게는 거곡과 청목곡을 주고 유유에게는 벼슬을 추증하고 그 아들 다우를 대사자로 삼았다.
두 사람에 대해 남은 기록은 이것이 거의 전부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그전에 무엇을 했는지, 나이가 몇이었는지 알 수 없다. 유유는 동부 사람이라는 것 하나, 밀우는 그마저도 분명치 않다.
한 사람은 몸으로 시간을 벌었고 한 사람은 목숨과 적장을 맞바꿨다. 나라가 넘어가기 직전의 몇 달 안에 두 사람이 그렇게 했고, 그 뒤로 고구려는 400년을 더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