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 — 아들을 치는 편에 선 아버지

936 9월 · 완산주(전주) · 금산사 · 일리천

후백제를 세운 사람이다. 그리고 후백제가 무너질 때 그것을 무너뜨리는 편에 서 있었다.

호랑이가 젖을 먹였다

삼국사기는 그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가 밭을 갈고 어머니가 밥을 내가는 사이 아이를 수풀 아래 두었더니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마을 사람들이 듣고 기이하게 여겼다.

아버지 아자개는 상주 가은현 사람으로 농사를 짓다가 뒤에 장군을 자칭한 인물이다.

지렁이의 아들

삼국유사는 다른 이야기를 함께 실었다. 『고기』라는 책을 인용한 것이다.

광주 북촌에 부자가 살았는데 그 딸이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밤마다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자고 간다고 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사람의 옷에 꽂아두어라.

그대로 했다. 날이 밝아 실을 따라가 보니 북쪽 담장 아래 큰 지렁이의 허리에 바늘이 꽂혀 있었다.

그 뒤로 아이를 배어 사내를 낳았는데 그가 견훤이다.

일연은 이 이야기를 적으면서 그저 『고기』에 이렇게 되어 있다고만 했다. 믿는다고도 믿지 않는다고도 하지 않았다.

세운 나라

그는 신라의 군인으로 출발했다. 서남해 방면에서 근무하다 892년에 무리를 모아 일어섰고, 900년 완산주에 도읍해 후백제를 세웠다. 백제의 원한을 갚겠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한동안 왕건보다 우세했다. 927년에는 서라벌로 들이닥쳐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세웠다. 돌아오는 길에 공산에서 왕건을 크게 이겼다. 왕건은 겨우 목숨만 건졌다.

무너지는 순서

그런데 끝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왔다.

935년, 그는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맏아들 신검이 아우들과 함께 아버지를 금산사에 가두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금강은 죽였다.

석 달 뒤 견훤은 금산사를 빠져나와 고려로 갔다. 자신이 세운 나라를 무너뜨려 달라고 왕건에게 청한 것이다.

왕건은 그를 상보라 부르며 예우했다.

936년 일리천에서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맞붙었다. 그 고려군 진영에 견훤이 있었다. 자기가 세운 나라와 자기 아들을 치는 자리였다.

후백제는 그 싸움으로 끝났다. 그리고 견훤은 며칠 뒤 등창이 심해져 황산의 절에서 죽었다.

죽기 전에 그가 남긴 말이 고려사에 적혀 있다. 완산이 그립다는 것이었다.

두 이야기 사이

호랑이가 젖을 먹였다는 이야기와 지렁이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한 사람에게 붙어 있다.

앞의 것은 영웅의 탄생담이고 뒤의 것은 이물의 자식이라는 이야기다. 방향이 정반대다.

같은 사람에 대해 두 종류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졌다는 것은, 그를 우러른 사람과 낮춰 본 사람이 둘 다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이야기를 나란히 남겨둔 것은 승려 일연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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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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