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으려면 먼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것조차 몰랐다. 두 번째 갈래는 남의 나라 도서관 창고와 신사 구석에서 그것을 찾아낸 사람들이다.
박병선(1923~2011)은 1955년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 프랑스 유학 비자를 받아 파리로 건너갔다. 떠나기 전 스승 이병도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프랑스에 가면 병인양요 때 빼앗긴 책을 찾아보라. 그는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그가 먼저 세상에 내놓은 것은 『직지』였다. 개항기 프랑스 외교관이 조선에서 모아 간 책들 사이에 있던 고려 말의 불교 책이다. 책 끝에 「주조」, 곧 쇠를 부어 활자를 만들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증명이 되지 않았다. 그는 중국과 일본의 인쇄 책을 뒤지고 대장간을 돌았으며, 흙으로 활자를 만들어 구워 보다 오븐에 불을 내기도 했다. 1972년 「세계 책의 해」를 맞아 도서관이 연 전시에서 직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소개되었다. 직지는 지금도 파리에 있다.
그가 끝내 붙잡고 있던 것은 외규장각 의궤였다. 「병인양요 때 가져온 책은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는 옛 기록을 단서로 오래 찾았고, 1975년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파손 도서로 분류돼 있던 의궤를 찾아냈다. 이 일이 한국에 알려진 뒤 도서관과 사이가 틀어져 그는 사서 일을 그만두었다고 전한다. 그 뒤에도 열람실을 드나들며 의궤를 하나하나 풀어 썼다.
최서면(1928~2020)은 일본에서 오래 한국사 자료를 모은 사학자였다. 임진왜란 때 정문부의 의병이 함경도에서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를 이긴 일을 새긴 북관대첩비는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길주에서 뜯어 갔다. 1909년 조소앙이 이 비가 도쿄에 있다고 적었지만, 식민지 시기라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1978년 최서면이 야스쿠니 신사 한구석에 서 있는 이 비를 확인해 세상에 알렸다. 이긴 전쟁의 기록이 진 쪽의 신사에 전리품처럼 서 있었다.
정조문(1918~1989)은 결이 조금 다르다. 그는 어디 있는지 모르던 것을 찾은 사람이 아니라, 이미 일본에 건너가 흩어진 것을 그 땅에서 하나하나 사 모은 사람이다. 1955년 무렵 조선 백자 항아리 하나를 만난 뒤 40년 가까이 모은 1,700여 점으로 1988년 교토에 고려미술관을 열었다. 남도 북도 아닌 「고려」라는 이름을 붙였다. 간송이 떠나기 전에 붙잡았다면, 정조문은 떠난 곳에서 되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고향으로 가져오지 않고 교토에 두었다. 재일동포 아이들이 자기 뿌리를 보고, 일본 사람들이 한반도 문화를 보게 하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