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지킨 사람들 — 전형필, 오세창, 손재형

1937 · 경성 성북동 · 도쿄

식민지 시기, 조선의 옛 물건은 비쌌다. 일본의 수집가들이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 옛 그림을 찾았고, 무덤을 파서 꺼낸 청자가 골동 시장을 돌았다. 그때 무언가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먼저 사는 것이었다. 사지 않으면 바다를 건너갔다.

전형필(1906~1962)은 서울 종로의 큰 부잣집에서 태어나 스물네 살에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그 돈을 옛 그림과 글씨, 도자기와 책을 사들이는 데 썼다. 1937년에는 도쿄에 살던 영국인 변호사 개스비가 모아 온 고려청자 수집품을 통째로 사 왔다. 흩어져 팔리기 전에 한꺼번에 들여온 것이다. 그는 이 일을 위해 땅을 팔았다고 전한다. 1938년에는 성북동에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첫 사립 박물관 보화각을 지었다. 지금의 간송미술관이다.

그가 지킨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1940년 무렵 경북 안동에서 나온 이 책은 한글을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 적은 단 하나의 원본이다. 조선어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던 때였다. 그는 이 책을 사들인 뒤 해방이 될 때까지 드러내지 않았다. 전쟁 중 피란길에도 품고 다녔다고 전한다.

전형필에게 옛 물건을 보는 눈을 길러 준 사람은 위창 오세창(1864~1953)이다. 3·1운동 민족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그는 옛 서화가들의 이름과 행적을 모아 정리한 책을 남겼다. 누가 언제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야 무엇을 지켜야 할지도 안다. 오세창은 지키는 일의 앞자리에서 목록을 만든 사람이다.

손재형(1903~1981)은 서예가였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추사를 깊이 연구하던 경성제국대학 교수 출신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의 손에 있었고, 그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그림도 도쿄로 갔다. 1944년, 전쟁 막바지의 도쿄로 손재형이 건너갔다. 그는 날마다 후지쓰카의 집을 찾아가 그림을 넘겨 달라고 청했고, 끝내 그림을 받아 돌아왔다. 이듬해 그 집이 공습을 맞아 소장품 상당수가 불탔다고 전한다. 한발만 늦었어도 세한도는 없었다.

이 사람들의 일을 이야기할 때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은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전형필은 물려받은 재산이 있었고, 손재형도 넉넉한 집안 사람이었다. 그 재산이 어떻게 모인 것인지를 묻는 사람도 있다. 그 물음은 정당하다. 다만 같은 돈을 가진 사람 대부분은 그렇게 쓰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쓴 방식이 오늘 우리가 보는 것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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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흩어진 문화재를 지킨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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