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비와 중국 기록 — 서쪽 전쟁은 적히고 남쪽 전쟁은 안 적혔다

414 · 집안 · 요동

광개토왕비는 414년에 세워졌다.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의 일을 돌에 새긴 것이고, 우리 고대사에서 당대에 만들어진 기록으로는 가장 긴 축에 든다.

이 비에 대해서는 자료실에 따로 자리가 마련돼 있다. 비문 자체를 처음부터 읽는 일은 사료읽기의 독립 시리즈가 맡고 있고, 신묘년조를 둘러싼 논쟁의 정리는 「역사왜곡에 맞서다」에 별도의 편이 있다. 그러니 이 편에서는 그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여기서 볼 것은 하나다. 비에 적힌 일들이 중국 사서에는 어떻게 적혔고, 또 어떻게 안 적혔는가.

먼저 이름부터 어긋난다.

삼국사기는 이 왕의 이름을 담덕(談德)이라 적는다. 그런데 중국 쪽 사서는 안(安)이라 적는다. 7편에서 연개소문의 성이 당 고조의 이름을 피해 바뀐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서는 이유가 그것과 달라 보인다. 다만 결과는 비슷하다. 같은 사람이 기록하는 쪽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남았다.

그리고 비 자체는 또 다른 이름을 새겼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라는 긴 시호다. 경주 호우총에서 나온 그릇과 집안의 모두루묘 묵서에도 비슷한 호칭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한 사람에 대해 세 종류의 이름이 세 종류의 자료에 남아 있는 셈이다. 우리 쪽이 스스로 새긴 것, 우리 역사책이 적은 것, 그리고 중국 사서가 적은 것.

다음은 사건이다. 여기서 이 편의 핵심이 나온다.

광개토왕 시기에 벌어진 일 가운데 중국 사서에 비교적 잘 나타나는 것이 있다. 후연과의 전쟁이다. 400년 무렵부터 요동을 두고 벌인 공방, 402년 숙군성 공격, 그 뒤로 이어지는 싸움들이 중국 쪽 기록에서 확인된다. 후연은 중국 안의 나라였으니 그쪽 사서에 적힐 이유가 충분했다.

반면 비문이 가장 길게 다루는 사건들, 그러니까 백제를 친 일, 신라를 도와 왜를 물리친 일, 동부여를 복속시킨 일은 중국 사서에서 같은 무게로 확인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답은 앞에서 이미 나왔다.

19편에서 본 서식이다. 중국 사서는 자기와 관련된 것을 적는다. 고구려가 요동에서 후연과 싸운 일은 중국의 일이지만, 고구려가 남쪽에서 백제나 왜와 싸운 일은 중국의 일이 아니었다. 칸이 없으면 적히지 않는다.

이 대비가 알려 주는 것이 두 가지다.

하나. 중국 사서에 없다는 것이 그 일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4부의 첫 편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야기이고, 여기서는 그것이 더 분명하게 보인다. 같은 왕의 같은 재위 기간인데 서쪽 전쟁은 적히고 남쪽 전쟁은 안 적혔다. 기록의 유무를 가른 것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기록자와의 거리였다.

둘. 그렇다면 비문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진다. 비문은 중국 사서가 채우지 못하는 칸을 채운다. 우리 쪽에서 우리 쪽 관심사로 적은 당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를 반드시 덧붙여야 한다. 비문도 목적을 가진 문서다.

아들이 아버지의 공적을 새긴 것이고, 그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세운 것이다. 그러니 비문에 적힌 것을 그대로 사실로 옮겨 적는 것은, 우리가 중국 사서에 대해 하지 말자고 한 일을 우리 기록에 대해 하는 셈이 된다.

20편에서 정한 규칙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우리에게 유리한 기록에도 같은 자를 대야 한다. 개로왕의 표문을 설득 문서로 읽어야 한다고 6편에서 말했듯이, 비문도 현창하는 문서로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는다고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읽어야 무엇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정리하면 광개토왕이라는 한 사람 앞에 세 종류의 기록이 있다. 돌에 새긴 것, 우리 역사책, 그리고 중국 사서. 셋은 서로 다른 것을 적었고 서로 다른 것을 뺐다. 어느 하나로 나머지를 판정하려 들면 그 순간부터 논증이 아니라 편들기가 된다.

사료 읽는 법. 같은 사건에 대한 기록이 여럿일 때는 무엇이 일치하는지보다 무엇이 각각에만 있는지를 먼저 보라. 각각에만 있는 것이 그 기록의 관심사를 드러내고, 관심사를 알면 왜 나머지가 빠졌는지도 설명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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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은 우리를 어떻게 적었나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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