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서가 우리를 나쁘게만 적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쪽 사람들에 대해서는 유난히 좋은 말을 쓴 대목이 여럿 있다.
후한서 동이열전은 서문에서부터 그렇다. 왕제를 인용해 동방을 이라 하는데 이는 뿌리라는 뜻이며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한다고 풀고, 이어서 이렇게 적는다. 그러므로 천성이 부드럽고 순하여 도로 다스리기 쉬우며, 심지어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까지 있다(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不死之國焉).
17편에서 본 설문해자의 주도 같은 결이다. 동이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 자는 오래 살아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라고 했다.
이런 문장들은 기분이 좋다. 그래서 자주 인용된다. 우리를 군자의 나라라 불렀다, 예의의 나라라 했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편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그 반대다. 칭찬도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이유를 하나씩 보자.
첫째, 이 칭찬은 관찰이 아니라 관념이다.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라는 말은 산해경 계통의 오래된 관념에서 왔다. 실제로 누가 가서 보고 온 결과가 아니라, 동쪽 멀리에는 그런 곳이 있다는 옛 이야기가 문헌을 타고 내려온 것이다. 19편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도 칸을 채우는 방식이었다. 동쪽 항목에는 동쪽에 어울리는 말이 들어간다.
둘째, 칭찬의 내용이 무엇인지 보라.
천성이 부드럽고 순하다. 그래서 도로 다스리기 쉽다. 두 문장이 붙어 있다. 부드럽고 순하다는 평가가 다스리기 쉽다는 판단으로 곧장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 칭찬은 그 사회의 미덕을 인정한 말이면서 동시에 그 사회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평가다. 앞 문장만 떼어 오면 좋은 말이 되고, 두 문장을 함께 읽으면 다른 것이 보인다. 10편에서 흰옷 기록의 앞뒤 문장을 함께 읽어야 한다고 했던 것과 같은 자리다.
셋째, 칭찬과 비난은 같은 자에서 나온다.
16편에서 본 문장을 떠올려 보자. 고구려 사람들은 성질이 사납고 급하며 노략질을 좋아한다. 14편에서 본 문장도 있다. 한 지역에는 꿇어 절하는 예가 없다.
같은 사서 안에서 어떤 집단은 어질고 순하다고 하고 어떤 집단은 사납고 예가 없다고 한다. 기준은 하나다. 중화의 질서에 얼마나 가까운가, 혹은 얼마나 다루기 쉬운가. 칭찬을 받아들이면 그 자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그러면 같은 자로 매겨진 비난도 함께 인정하게 된다.
넷째, 우리가 그 칭찬을 인용해 온 방식도 봐야 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그 예다. 널리 쓰이고 교과서 밖에서도 흔히 들리는 말인데, 정작 이 네 글자가 어느 중국 고전의 어디에 그대로 있는지를 대면 여러 출처가 지목되고 어느 것도 확정적이지 않다. 이런 말은 대개 여러 문헌의 취지가 뭉쳐져 근대에 굳은 표현이다.
그렇다고 이 말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근거로 삼아 논증할 때는 출처를 대야 하고, 출처를 대려 하면 생각보다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이 시리즈가 20편에서 정한 규칙이 다시 나온다. 우리에게 유리한 서술에도 같은 자를 대야 한다는 것이다. 불리한 서술만 사료 비판을 하고 유리한 서술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가 비판하는 방식으로 우리도 논증하게 된다.
자료실의 「역사왜곡에 맞서다」에는 부풀린 왜곡이 자부심이 될 때를 다룬 편이 있다. 깎아내리는 왜곡만 왜곡이 아니라 치켜세우는 왜곡도 왜곡이라는 이야기다. 이 편은 그 문제의 사료 쪽 얼굴이라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균형을 위해 한마디 덧붙인다. 그렇다면 이런 칭찬 기록은 아무 값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동이에 대한 서술이 다른 방위에 대한 서술보다 온화한 편이라는 사실 자체는 자료가 된다. 중국이 사방을 다 똑같이 취급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관계의 온도가 방향마다 달랐다는 뜻이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실제로 어질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쪽에서 우리를 그렇게 자리매김했다는 증거다.
사료 읽는 법. 나를 칭찬하는 기록을 만나면 두 가지를 물어라. 이 칭찬은 본 것인가 아니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말인가. 그리고 이 칭찬의 바로 다음 문장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