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세 편을 이어 읽으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깎아내리는 왜곡과 부풀리는 왜곡은 서로 반대 방향이 아니라 같은 도구의 양쪽 날이다.
그런데 두 왜곡이 받는 대접은 다르다. 깎아내리는 쪽은 즉시 반발을 부른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위안부 강제성 부정은 나오는 순간 논쟁이 벌어진다. 부풀리는 쪽은 그렇지 않다. 듣는 사람에게 자부심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에 황금의 나라가 있었다는 말에 굳이 출처를 따져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백 년이 지나도록 남는다.
『미광』의 간기 뒤에는 발행에 참여한 기관과 사람들의 이름이 실려 있다. 산운공립보통학교, 조문경덕왕릉향사계, 귀천금융조합, 조문면사무소와 산운면사무소와 가음면사무소, 그리고 조문면과 산운면에 사는 주민 24명이다.
이 명단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가 이 편의 핵심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고장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에 이름을 보탠 주민들이다. 그 책의 앞부분이 임나일본부설을 뼈대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참여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겨눠야 할 것은 이름을 올린 쪽이 아니라 그 구조를 설계한 쪽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문국과 우두주 이야기를 이어가는 분들은 대개 향토를 아끼는 분들이다. 나무랄 일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함께 확인할 일이다.
같은 구조가 지금 국가 단위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도 짚어둘 필요가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로 편입하려 했고, 요하 일대의 신석기 문화를 중화 문명의 기원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병행했다. 북한은 평양 일대를 인류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는 대동강문화론을 내세웠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의 시작 연대를 크게 올려 잡는 논의가 이어졌다. 세 경우 모두 자국 고대사를 앞당기거나 넓히는 방향이며, 학술 논쟁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국가적 기획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사료적 근거 없이 고대사를 부풀리는 주장들이 오래 유통돼 왔다. 그 상당수가 형식과 논리 구조에서 일제가 만든 것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지명의 소리가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삼고, 원본이 확인되지 않는 문헌을 인용하고, 수천 년의 연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맞서 싸운다면서 상대의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은 셈이다.
침략의 논리에 맞서는 길은 과장이 아니라 실증이다. 이것은 임나일본부설이 폐기되는 과정이 이미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 설을 무너뜨린 것은 더 크고 화려한 반대 주장이 아니라, 파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사료를 한 줄씩 따져 읽은 작업이었다.
부풀리는 왜곡이 특히 다루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믿는 마음이 대개 선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선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사실을 바로 세우는 일이 이 시리즈가 계속 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