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적힌 것들 — 빈칸의 모양이 그리는 관심 지도

3 · 동이전 전반

지금까지 열아홉 편을 오면서 여러 번 같은 말을 했다. 이 대목이 비어 있다, 우리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안 적혀 있다.

이번 편은 그 빈칸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첫째, 그들이 자기를 뭐라고 불렀는지가 없다.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 예, 한. 이 이름들은 모두 중국 쪽 표기다. 그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어떤 소리로 불렀는지는 대부분 알 수 없다. 예외가 있기는 하다. 14편에서 본 신라의 관등 이름들, 15편에서 본 고구려의 부경 같은 것들이다. 소리를 옮긴 표기라 우리말의 흔적이 남았다. 그런데 정작 나라 이름 자체의 자칭은 그렇게 남은 것이 드물다.

둘째, 말이 없다.

삼국지 고구려 조는 고구려가 부여의 별종이며 말과 여러 가지가 부여와 대체로 같다고 적는다. 그 한 줄이 사실상 전부다. 무슨 말을 썼는지, 어떤 소리였는지는 적히지 않았다. 사신을 만나면 통역을 통했으니 기록자에게 그 말은 통역을 거쳐 사라지는 것이었다.

19편에서 본 문장이 여기서 아프게 읽힌다. 통역하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손을 땅에 짚고 낮은 소리로 말한다. 그 낮은 소리가 무슨 말이었는지는 남지 않았다.

셋째, 자기 역사가 없다.

삼국지 부여 조에는 건국 이야기가 없다. 나라의 노인들이 자기들은 옛날에 도망쳐 온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는 짧은 한 줄이 있을 뿐이다. 동명 설화가 들어오는 것은 4편에서 본 대로 150년 뒤에 나온 후한서에서다.

이것을 어떻게 읽을지는 조심해야 한다. 3세기 부여에 건국 신화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3세기 기록자가 그것을 적을 항목을 갖고 있지 않았거나, 물어보지 않았거나, 들었어도 옮길 만하다고 여기지 않았다는 뜻에 가깝다.

넷째, 여성이 거의 없다.

왕후도 어머니도 딸도 이름을 갖고 나오지 않는다. 11편에서 본 서옥제 기록에는 여자의 집과 여자의 부모가 나오지만 정작 여자는 나오지 않는다. 상중에 부인이 베로 얼굴을 가린다는 대목처럼 관습의 대상으로만 등장한다.

다섯째, 아래쪽 사람들의 하루가 없다.

하호가 먼 데서 쌀과 물고기와 소금을 져다 준다는 문장은 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고 며칠을 걸어야 했는지는 없다. 기록자에게 하호는 물자가 어떻게 조달되는가라는 질문의 답이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 이 빈칸들이 왜 생겼을까.

가장 큰 이유는 19편에서 본 서식이다. 채울 칸이 정해져 있었고 그 목록에 없는 것은 적히지 않았다. 자칭도 언어도 신화도 여성도 평민의 하루도 그 목록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물어볼 상대가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사신과 통역과 국경의 관리와 포로. 이들이 아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더 단순하다. 관심이 없었다.

이제 이 빈칸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

먼저 조심할 것부터. 안 적혔다고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당연한 말을 굳이 적는 이유는, 안 적힌 것을 없었던 것으로 읽는 논증이 실제로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 중국 사서에 없으니 그런 일은 없었다는 식이다. 그건 서식의 한계를 역사의 한계로 착각하는 것이다.

반대쪽 위험도 크다. 빈칸을 상상으로 채우는 것이다. 기록이 없는 자리는 아무 말이나 해도 반박당하지 않으니, 유사역사학이 늘 그 자리에서 자란다. 안 적혔다는 사실은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빈칸의 쓸모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하나, 빈칸의 모양이 기록자의 관심 지도를 그린다. 무엇을 적고 무엇을 안 적었는지를 늘어놓으면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싶어 했는지가 드러난다. 이것은 그 사회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정보다.

둘, 빈칸은 다른 자료가 일할 자리를 알려 준다. 자칭과 언어는 금석문과 목간이, 신화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아래쪽 사람들의 하루는 고고학이 조금씩 채운다. 중국 사서가 못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다른 자료를 제자리에 놓을 수 있다.

사료 읽는 법. 한 편을 다 읽고 나면 무엇이 적혔는지 말고 무엇이 없는지를 한 번 적어 보는 것이 좋다. 없는 것의 목록이 있는 것의 목록만큼 길고, 때로는 더 많은 것을 알려 준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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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은 우리를 어떻게 적었나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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