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순서 — 위치, 규모, 풍속, 관제, 물산. 왜 늘 이 차례인가

3 · 부여 · 고구려 · 한

열여덟 편을 오는 동안 계속 걸렸던 것이 있다. 어느 조를 펴도 순서가 같다는 것이다.

삼국지 부여전을 첫 줄부터 따라가 보자.

먼저 어디에 있는지를 적는다. 장성 북쪽, 현도에서 천 리, 남으로 고구려 동으로 읍루 서로 선비, 사방 이천 리. 다음이 규모다. 가구가 팔만. 그다음이 정착해 사는지 여부와 시설이다. 한곳에 자리 잡고 살며 궁실과 창고와 감옥이 있다. 이어서 지형과 땅, 사람의 생김새와 성질, 임금과 관직, 호민과 하호, 여러 가가 나눠 맡은 구역, 먹고 마시는 예법, 제천행사, 옷, 형벌, 물산, 무기, 성책, 노래, 점, 전쟁하는 방식, 그리고 장례.

고구려전도 마찬가지다. 요동 동쪽 천 리, 사방 이천 리, 가구가 삼만. 그러고 나서 지형과 땅과 성질과 관직과 다섯 부족이 이어진다.

부여는 팔만 호, 고구려는 삼만 호. 두 숫자가 같은 자리에 적혀 있어서 곧바로 비교가 된다. 이런 배열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면 왜 이 순서일까.

답은 간단하다. 이것이 실무의 질문 순서이기 때문이다.

어디 있는가. 여기서 며칠 걸리는가. 얼마나 큰가. 떠도는 사람들인가 자리 잡고 사는 사람들인가. 먹을 것이 나는가. 누가 다스리는가. 그 아래 계층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사신을 보내면 누구와 말해야 하는가. 무엇을 받을 수 있는가. 싸운다면 어떤 상대인가.

이 목록을 순서대로 채우면 그대로 동이전 한 조가 된다. 사서의 항목 순서는 문학적 구성이 아니라 조정과 사절과 군대가 판단하는 순서다.

이 틀에는 힘이 있다. 정해진 칸이 있으면 채워야 하고, 빈 칸은 눈에 띈다.

그래서 기록자는 모르는 것도 채우려 한다. 앞선 책에서 옮겨 오거나, 비슷하다고 여긴 집단의 것을 가져다 놓는다. 4편에서 본 후한서가 삼국지의 부여전을 거의 그대로 옮기면서 네 글자만 바꾼 것도, 8편에서 본 한원의 주가 이 책 저 책을 끌어다 붙인 것도 그렇게 설명된다. 칸이 있으면 채워지고, 채워진 것이 다음 사람에게는 자료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틀이 판단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예법이라는 칸이 있으니 그 칸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부여에 대해서는 조두를 쓰고 절하고 잔을 씻으며 서로 읍하고 사양한다고 적고, 한에 대해서는 꿇어 절하는 예가 없다고 적는다. 예가 있다와 없다가 같은 칸의 두 답이 된다.

풍속이라는 칸도 마찬가지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다는 대목에는 흉노와 같은 풍속이라고 붙이고, 상중에 순백을 입는다는 대목에는 대체로 중국과 비슷하다고 붙인다. 낯선 것은 흉노 쪽으로, 익숙한 것은 중국 쪽으로. 칸을 채우려면 어딘가에 견주어야 하고, 견줄 곳은 둘뿐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사서에서 만나는 어떤 판단들은 기록자 개인의 편견이라기보다 서식의 산물이다. 그 사람이 특별히 우리를 낮춰 본 것이 아니라, 그 서식이 그렇게 채워지게 되어 있었다.

순서 자체에도 뜻이 있다. 위치를 맨 앞에 적는다는 것은 중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가장 먼저 묻는다는 뜻이다. 17편에서 본 구복의 동심원이 여기서 실제 문장 순서로 나타난다. 어느 방향으로 몇 리인가가 첫 문장이 되는 세계에서는, 모든 나라가 중심으로부터의 거리로 먼저 규정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금까지 해 온 두 가지가 답이다.

하나는 같은 칸끼리 겹쳐 보는 것이다. 옷 칸만 모아 보고 혼인 칸만 모아 보면, 무엇이 실제 차이이고 무엇이 서식의 되풀이인지가 조금씩 갈린다. 2부 일곱 편에서 한 일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칸에서 삐져나온 문장을 찾는 것이다. 걸음이 다 뛰는 것 같다, 술을 잘 빚는다, 성책이 모두 둥글다, 통역하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손을 땅에 짚고 낮은 소리로 말한다. 이런 문장들은 어느 항목에도 안 들어간다. 서식이 시키지 않은 말이라 본 사람의 눈이 남아 있다.

사료 읽는 법. 사서의 항목 순서를 미리 알고 읽으면 두 가지가 보인다. 이 자리에 응당 있어야 할 문장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문장이 그 자리에 없는데도 왜 여기 적혀 있는지. 앞의 것은 빠진 것을 알려 주고 뒤의 것은 진짜를 알려 준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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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은 우리를 어떻게 적었나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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