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에서 동이가 남이 만든 칸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그 칸에 들어간 뒤에 실제로 무슨 일이 오갔는지를 본다. 조공과 책봉이다.
먼저 말을 풀어 두자. 조공은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는 일이고, 책봉은 그 대가로 중국 황제가 벼슬과 작호를 내려 주는 일이다. 사서를 읽다 보면 이 두 낱말이 끝없이 나온다. 어느 해에 사신이 와서 무엇을 바쳤고, 어떤 장군 칭호를 받았다는 식이다. 책부원귀 외신부는 거의 이런 기사로만 채워져 있다.
이 형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오래된 문제다. 다만 결론 하나는 이미 자료실의 「역사왜곡에 맞서다」에서 다뤘다. 조공과 책봉은 전근대 동아시아의 보편적 외교 형식이지 지배와 종속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잣대라면 일본과 베트남과 유구도 중국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편은 그 결론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대신 사료를 읽는 사람에게 필요한 다른 것을 본다. 그 형식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가다.
첫째, 작호는 주는 쪽만 정한 것이 아니었다.
5편에서 본 송서의 백제 기사를 떠올려 보자. 백제 왕이 사신을 보내 작호를 받는데, 그 사신 명단에 이미 백제 왕이 사사로이 관직을 준 사람들이 들어 있다. 6편에서 본 개로왕 표문에도 사사로이 관군장군이라는 칭호를 준 여례와 대방태수라는 칭호를 준 장무를 보낸다고 적혀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백제 왕이 먼저 자기 신하들에게 중국식 벼슬 이름을 붙여 놓고, 그것을 중국에 통보하듯 알린 것이다. 그러면 중국 쪽에서 대체로 그대로 승인해 주었다. 주는 쪽이 정해 내려 준다기보다, 받는 쪽이 원하는 것을 올리면 그것을 인정해 주는 절차에 가까웠다.
둘째, 그 작호는 대개 안에서 쓰려고 받았다.
밖에서 벼슬을 받아 오면 안에서 힘이 된다. 우리 왕이 저 큰 나라의 황제에게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신하들과 이웃 나라에 대해 쓰이는 것이다. 백제가 신하들에게 왕이나 후 같은 칭호를 나눠 준 것도 같은 원리로 본다. 중국에서 받아 온 권위를 자기 안에서 다시 나눠 쓰는 구조다.
셋째, 받으면서 동시에 안 받기도 했다.
발해가 대표적이다. 발해는 당의 책봉을 받았지만 안으로는 인안, 대흥 같은 독자 연호를 썼다. 밖으로는 왕이고 안으로는 황제인 셈이라 외왕내제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른 데도 아닌 중국 정사 신당서 발해전에 실려 있다. 이 이야기는 자료실의 환단고기 편에서 이미 자세히 다뤘다.
넷째, 형식이 어긋나면 기록에서 티가 난다.
9편에서 편명 이야기를 미뤄 뒀는데 여기서 하겠다. 송사는 고려를 외국전에, 원사는 외이전에, 명사는 조선을 외국전에, 그리고 청사고는 속국전에 넣었다.
바깥 나라에서 바깥 오랑캐로, 다시 딸린 나라로. 같은 대상을 두고 편명이 옮겨 다닌다.
이 변화를 그대로 관계의 변화로 읽고 싶어지지만 조심할 것이 있다. 편명은 그 사서를 만든 왕조의 자기 인식을 담은 것이지 상대의 지위를 실측한 것이 아니다. 특히 청사고는 1928년에 나온 원고본이고, 청 제국이 무너진 뒤에 편찬됐다. 속국이라는 말을 쓴 시점이 실제로 그 관계가 살아 있던 때가 아니라 그것이 끝난 뒤라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니 편명 변화에서 읽어야 할 것은 상대가 실제로 어떻게 됐는가가 아니라, 그 사서를 쓴 쪽이 자기와 상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고 싶어 했는가다. 이 시리즈가 계속 해 온 구분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지막으로 실무적인 이야기 하나. 조공 기사는 지루하지만 값이 있다.
어느 해에 사신이 왔다는 기록은 그 나라가 그 해에 존재했고 사신을 보낼 여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반대로 몇십 년 동안 기사가 끊기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6편에서 본 것처럼 백제가 471년을 끝으로 송과 끊긴 뒤 이듬해 갑자기 북위로 방향을 튼 것도 그렇게 읽어 낸 것이다.
사람 이름도 전쟁도 안 나오는 밋밋한 기사들이지만, 그것들이 줄지어 있으면 관계의 곡선이 그려진다.
사료 읽는 법. 조공과 책봉 기사를 읽을 때는 세 가지를 나누어 보아야 한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가, 그 칭호가 어디서 쓰였는가, 그리고 그 기사가 실린 편의 이름은 무엇인가. 세 번째는 그 나라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 사서를 만든 쪽에 대한 정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