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 공녀에서 황후로, 성공이 미담이 아닌 이유

1340 · 원 대도 흥성궁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길이 막힌 사람들이 밖에서 길을 찾는 이야기를 해 왔다. 이번 사람은 그 틀의 가장 극단에 있다. 출발점에는 선택권이 전혀 없었고, 도달한 곳은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높았으며, 그 성공을 우리 역사는 미담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세 가지가 다 이유가 있다.

행주 기씨 집안의 딸이었던 그는 공녀로 원에 보내졌다. 공녀 — 고려가 원에 바쳐야 했던 여성들이다. 근 백 년 동안 수많은 고려의 딸들이 이 이름으로 국경을 넘었고, 딸을 숨기려고 조혼 풍습이 번질 만큼 고려 사회가 앓던 상처였다. 그 행렬 속의 한 사람이었던 기씨 소녀는 고려 출신 환관의 주선으로 궁에 들어가, 황제의 차를 따르는 궁녀가 됐다.

황제 토곤테무르가 그에게 마음을 주자 정후 타나실리의 학대가 시작됐다. 채찍질과 인두질까지 견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반전은 정치에서 왔다. 정후의 친정이 반란에 연루되어 몰락한 것이다. 기씨는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낳았고, 몽골 명문가만 황후가 될 수 있다는 조정의 반대를 황제의 총애가 눌러, 마침내 제2황후로 책봉됐다. 공녀가 세계 제국의 황후가 된 것이다. 이 시리즈 어떤 인물의 상승도 이 낙차에는 미치지 못한다.

황후 기씨는 유능했다. 자정원이라는 기구를 세워 재정을 쥐었고, 고려 출신 환관들을 요직에 심어 자기 세력을 만들었으며, 대기근이 들자 창고를 열어 죽을 쑤고 죽은 이들을 묻어 주는 진휼을 벌여 민심을 샀다.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는 데도 성공했다. 대도의 궁정에서 고려 옷과 고려 음식이 유행하는, 이른바 고려양의 시대가 그의 치세와 겹친다.

문제는 그 권력이 고려 쪽으로 흘러넘치면서 시작됐다. 오빠 기철을 비롯한 기씨 일족이 누이의 위세를 업고 고려에서 왕을 능멸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기철은 왕과 나란히 말을 달리려 했고, 일족은 남의 토지와 노비를 거리낌 없이 삼켰다. 1356년, 공민왕이 칼을 뽑았다. 기철 일족을 하루아침에 주살하고 원의 간섭 기구를 철폐한, 교과서에 반원 개혁으로 실린 그 사건의 표적이 바로 황후의 친정이었다.

친정이 도륙당했다는 소식에 기황후는 복수를 준비했다. 그리고 여기가 이 인물의 평가를 가르는 지점이다. 그는 고려 왕을 갈아 치우기로 하고, 최유에게 군사 1만을 주어 덕흥군을 새 왕으로 앞세워 고려를 치게 했다. 압록강을 건넌 침공군은 최영과 이성계의 군대에 전멸에 가깝게 깨졌다. 공녀로 끌려갔던 사람이 황후가 되어 고국에 군대를 보낸 것 — 이 장면 때문에 그의 이름은 고려사에서 원한과 함께 기록됐다.

다만 한 가지는 같은 무게로 적어야 공정하다. 그를 대도로 보낸 것은 고려였다. 공녀 제도라는 폭력이 먼저 있었고, 그 제도가 만든 사람이 제도를 만든 나라를 겨눈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 순환에서 어느 한쪽만 잘라 읽으면, 이야기의 절반을 잃는다.

끝은 제국과 함께 왔다. 1368년 주원장의 군대가 대도로 밀려오자 황실은 북쪽 초원으로 달아났다. 기황후의 그 뒤 행적은 기록이 끊긴다. 세계 제국의 황후였던 사람의 마지막이 언제 어디였는지, 아무도 적지 않았다. 경계를 넘어 정상까지 간 사람들의 결말 중에서도 가장 문자 그대로 — 지도 밖으로 사라진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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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