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 — 출신을 숨겨야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사람

1954 2월 · 도쿄

1954년 2월, 일본 전역의 거리에 텔레비전이 놓였다. 전파상 앞, 역 광장, 공원 — 사람들이 그 앞에 수천 명씩 모여 서서 한 남자를 보았다. 미국 레슬러 두 명을 상대로 그가 당수를 날릴 때마다 광장이 울렸다. 패전 이후 처음으로 일본이 미국을 이기는 장면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역도산이었고, 일본 사람들은 그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다.

본명 김신락. 함경남도 홍원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씨름 잘하는 소년을 눈여겨본 일본인 경찰이 스모 선수로 추천해, 열여섯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스모계에서 그는 빠르게 올라갔지만 세키와케 자리에서 멈췄다. 조선 출신이라 더 이상 오를 수 없다는 말이 돌았고, 그는 스물여섯에 스스로 상투를 잘랐다. 그리고 미국에서 들어온 새 구경거리, 프로레슬링을 택했다.

1954년의 그 경기로 그는 하루아침에 일본의 영웅이 됐다. 그 뒤 십 년 동안 역도산은 일본 프로레슬링 그 자체였다. 미국 챔피언 루 테즈를 꺾어 세계 타이틀을 땄고, 도장을 세워 후배들을 키웠다 — 그 제자들 중에 안토니오 이노키와 자이언트 바바가 있고, 조선에서 온 김일도 있었다. 그는 아파트와 골프장과 호텔을 짓는 사업가가 됐고, 일본 정계와 연예계의 유력자들과 어울렸다.

그 십 년 내내 그는 나가사키 출신이라고 말했다.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영웅의 자리가 무너진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재일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일본 대중은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미국을 이기는 일본인을 원하던 사회에서,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말하지 않는 대가로 그 역할을 맡았다. 이 시리즈의 다른 인물들은 이방인으로 살았지만, 역도산은 이방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지우고 살아야 했다.

1963년 초 그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서 시범 경기를 열고 박정희를 만나고, 고향 홍원의 소식을 들었다 — 북쪽에 두고 온 가족은 만날 수 없었다. 그해 12월, 도쿄의 나이트클럽에서 야쿠자 조직원과 시비가 붙었고, 그는 칼에 찔렸다. 상처 자체는 치명적이지 않았으나 뒤이은 감염으로 열흘 뒤 숨졌다. 서른아홉이었다.

죽은 뒤에야 그가 조선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일본에서 공공연히 말해지기 시작했다. 남한은 그를 자기 나라 사람이라 했고, 북한도 그를 자기 나라 사람이라 했고, 일본은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 나라가 저마다 다르게 부르는 이름 — 김신락, 역도산, 리키도잔 — 은 이 시리즈의 첫 편 흑치상지에게 두 개의 성이 있었던 것과 같은 자리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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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