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배달 — 산에서 내려온 사람, 극진의 이름을 세우다

1964 · 도쿄 이케부쿠로 극진회관

이 시리즈의 마지막 사람은 앞의 스무 명과 한 가지가 다르다. 그는 죽지 않고 이겼다. 모함도, 암살도, 수용소도 없었다. 일흔 넘게 살았고, 자기가 세운 것의 세계적인 성공을 보고 죽었다. 그런데 그 성공의 한가운데에도 이 시리즈의 문제는 그대로 있었다.

최영의는 전라도 김제에서 태어나 열다섯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비행사가 되려고 항공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가라테를 배웠다. 패전 뒤 일본 사회가 무너져 있던 시절, 그는 산으로 들어갔다. 지바의 산속에서 혼자 몇 년을 수련했다는 이야기, 그 산에서 내려와 소와 맞붙어 소의 뿔을 꺾었다는 이야기, 미국을 돌며 권투 선수와 레슬러들을 상대로 수십 번 이겼다는 이야기 — 최배달의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일화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지금도 논쟁이 있고, 그 자신이 이야기를 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전설을 사실로 적지 않는다. 다만 그 전설이 하나의 유파를 세울 만큼 컸다는 것은 사실이다.

1964년 그는 도쿄 이케부쿠로에 극진회관을 열었다. 극진, 끝까지 간다는 뜻이다. 그때까지의 가라테는 상대를 치기 직전에 멈추는 것이 규칙이었는데, 최배달은 실제로 치게 했다. 맞고 쓰러지는 가라테. 이 방식은 일본 무술계에서 이단이었지만 세계에서는 통했다. 극진은 백 개가 넘는 나라로 퍼졌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라테 사범이 됐다.

일본 이름은 오야마 마스타쓰. 그는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하다가 1968년에 일본으로 귀화했다. 역도산이 출신을 지웠다면, 최배달은 출신을 굳이 앞세우지도 감추지도 않는 쪽이었다. 그러나 그가 재일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일본 무술계에서 그를 끝내 주류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남았다. 전통 유파들은 그의 가라테를 가라테로 치지 않았다. 세계가 인정한 사람을 정작 그가 사는 나라의 동업자들이 인정하지 않은 것 — 이정기가 당에서도 신라에서도 곁가지였던 것과 같은 구조다.

한국에서 그의 이름이 커진 것은 만화와 영화를 통해서였다. 바람의 파이터. 한국인이 일본을 이기는 이야기로 소비됐고, 실제의 최배달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살고 일본에 귀화했으며, 한국에도 애정이 있었으나 한국에 돌아와 살 생각은 없었다. 두 나라 모두가 그를 자기 편의 이야기로 가져다 썼고, 그 자신은 어느 쪽 이야기에도 딱 들어맞지 않았다.

1994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극진은 곧 여러 갈래로 쪼개졌다. 그 분열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가 세운 것이 그가 없으면 하나로 서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역시 이 시리즈의 문법 안에 있다 — 경계를 넘은 사람이 만든 자리는 그 사람 한 명분의 크기여서, 그가 떠나면 자리도 흩어진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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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