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란 — 명나라 황궁에서 56년, 산 채로 묻힌 언니의 동생

1427 · 북경 자금성

이 시리즈의 3부는 임진왜란이 만든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그보다 150년 앞서, 전쟁도 없이 경계를 넘어야 했던 자매가 있다. 한 사람은 순장당했고, 한 사람은 56년을 황궁에서 살다 죽었다.

조선 초기에도 공녀는 있었다. 원이 명으로 바뀌었을 뿐, 황제가 처녀를 보내라 하면 조선은 보내야 했다. 1417년 청주 한씨 집안의 딸이 뽑혀 북경으로 갔다. 그는 영락제의 후궁이 됐다. 7년 뒤 영락제가 죽자 황제의 후궁 서른 명 남짓이 함께 묻혔다. 살아 있는 채로. 명나라 초기 황실의 순장 제도였다. 한씨는 죽기 전 유모에게 고향에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고, 그 유모가 조선에 돌아와 전한 이야기가 실록에 남아 있다. 방 안에 걸린 올가미와 그 위로 올라서던 여인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3년 뒤, 조선은 그 동생을 다시 보냈다. 새 황제 선덕제가 조선 여인을 원한다 했고, 언니의 미모를 기억하던 명 조정이 동생을 지목했다. 한계란은 열여덟이었다. 실록에 따르면 그는 떠나기 전 집안 재산을 친척들에게 나눠 주었고, 사람들은 언니가 이미 순장당한 집의 딸이 또 끌려간다며 생송장이라 불렀다.

동생은 죽지 않았다. 선덕제는 순장 제도를 이어 갔지만 그는 후궁이 아니라 궁녀였고, 궁녀는 묻히지 않았다. 그는 황궁에서 일했다. 선덕제의 어머니를 모셨고, 다음 황제의 유모 역할을 했고, 그 다음 황제에게는 할머니 같은 존재가 됐다. 네 황제를 섬기며 56년. 명 황실은 그를 노노(老老)라 부르며 존경했고, 조선 사신들은 북경에 갈 때마다 그를 찾아 조선의 일을 부탁했다. 세종·세조 대의 외교 뒤에는 자금성 안쪽의 이 조선 여인이 있었다.

그의 오빠 한확은 누이 둘 덕에 명 황실과 통하는 사람이 되어 조선에서 재상까지 올랐고, 그의 딸은 훗날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된다. 한 집안의 두 딸이 명 황궁에서 치른 대가 위에, 조선의 한 명문가가 세워진 셈이다.

한계란은 1483년 북경에서 죽었다. 일흔넷. 명 조정은 후한 장례를 치르고 시호를 내렸다. 그러나 그는 끝내 조선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열여덟에 나가서 일흔넷에 죽을 때까지 56년, 그가 원해서 간 것도 아니고 원해서 남은 것도 아니었다. 기황후는 공녀에서 황후가 되어 고국을 쳤고, 한계란은 공녀로 가서 궁녀로 살며 고국을 도왔다. 같은 제도가 만든 두 여자의 인생이 이렇게 갈렸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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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