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의 앞선 일곱 사람은 신분이 낮거나 나라가 없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번 사람은 정반대다. 태어나면서부터 왕위가 예약돼 있었고, 외할아버지는 세계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였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두 신분을 다 가진 셈이다. 그런데 바로 그 둘을 다 가졌다는 것이, 그를 평생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충선왕은 고려 충렬왕과 쿠빌라이의 딸 제국대장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려 역사상 처음으로 몽골 황실의 피를 받은 왕자였고, 이름도 둘이었다. 고려 이름 왕장, 몽골 이름 이지르부카. 어린 시절부터 대도(지금의 베이징)와 개경을 오가며 자랐는데, 훗날의 행적을 보면 그의 마음의 수도는 개경이 아니라 대도였던 것 같다.
스물넷에 아버지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자 그는 곧바로 개혁의 칼을 뽑았다. 관제를 뜯어고치고, 권세가들이 삼킨 토지와 노비 문제에 손을 댔다. 젊은 왕의 개혁은 일곱 달 만에 끝났다. 기득권의 반발에 왕실 내부의 무고 사건이 겹치면서, 원은 그를 대도로 소환하고 아버지를 복위시켰다. 고려의 왕을 갈아 끼우는 결정이 개경이 아니라 대도에서 내려지는 시대 — 그것이 그가 물려받은 왕관의 실제 무게였다.
대도에서 보낸 10년 동안 그는 고려 왕자가 아니라 원 제국의 정치인으로 살았다. 황제 자리를 둘러싼 다툼에서 카이산 편에 서서 옹립에 공을 세웠고, 그 대가로 심양왕이라는 봉작을 받았다. 만주 일대의 고려인들을 관할하는 자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려 왕으로 복위한 뒤에도 그는 개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도에 앉아 교서를 보내 고려를 다스렸다. 신하들이 돌아오시라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왕이 자기 나라를 원격으로 통치한, 우리 역사에 다시없는 장면이다.
결국 그는 다섯 해 만에 아들에게 왕위를 넘기고 자유인이 됐다. 그리고 그 자유로 만든 것이 만권당이다. 대도의 자기 집에 책 만 권을 쌓고, 고려에서 서른셋의 이제현을 불러오고, 조맹부를 비롯한 원 최고의 학자들과 어울리게 했다. 두 나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 두 나라의 지성이 만나는 방을 만든 것이다. 이 방을 통해 성리학이 고려로 흘러들었고, 그 학문은 두 세대 뒤 조선이라는 나라의 설계도가 된다. 그는 몰랐겠지만, 만권당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멀리 간 유산이 됐다.
말년은 이 시리즈의 문법대로 흘러갔다. 후원자였던 황제가 죽고 어린 황제가 서자, 고려 출신 환관의 모함이 그를 덮쳤다. 유배지는 토번, 지금의 티베트였다. 고려의 전 국왕이자 원의 부마가 머리를 깎이고 세계의 지붕으로 끌려간 것이다. 3년 뒤 정변으로 풀려났지만 몸은 이미 상해 있었고, 그는 쉰하나에 대도에서 눈을 감았다. 개경이 아니라, 평생 그리워하던 그 도시에서.
충선왕의 비극은 길이 막혀서가 아니라 길이 두 개여서 생겼다. 고려에서는 몽골 황실의 사람으로 의심받았고, 원에서는 어디까지나 부마국의 왕일 뿐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도 이방인일 수 있다는 것 — 그것이 이 사람이 시리즈에 더해 주는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