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의 종파는 스스로 갈라진 적보다 나라가 묶은 적이 많습니다. 신라의 5교9산을 고려가 5교양종으로, 조선 세종이 선교양종으로, 중종이 아예 종파 없음으로 묶었고, 총독부가 31본산으로, 1962년이 통합종단으로 묶었습니다. 지금의 조계종과 태고종은 그 마지막 매듭이 풀린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도표에서 가장 굵은 선은 갈라진 선이 아니라 나라가 묶은 회색 선입니다.
왼쪽 줄은 경전을 읽는 절(교종), 가운데 줄은 앉아서 깨닫는 절(선종), 오른쪽 줄은 그 밖(밀교·신흥)입니다. 점선은 종단이 "우리는 이 스님을 잇는다"고 스스로 말하는 법통 주장입니다 — 같은 태고 보우를 조계종과 태고종이 다르게 잇는 것이 보입니다. 어느 쪽이 정통인지는 이 도표가 판정하지 않습니다. 갈라진 사실과 시점, 그리고 각 종단이 스스로 하는 말을 나란히 둘 뿐입니다.
같은 스님을 두 종단이 다르게 잇습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법통이라는 것이 뒤에서 앞으로 그어지는 선이라는 뜻입니다.
세종은 일곱 종파를 둘로 묶으면서 종파 이름을 지웠고, 중종은 그 둘마저 지웠습니다. 그 뒤 400년 동안 스님들은 종파 대신 스승의 이름으로 자기를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400년의 불교는 종파가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종파가 필요 없었던 것일까요?
1962년의 통합은 나라(이승만 정부)가 한쪽을 편들면서 이루어졌고, 그래서 8년 만에 깨졌습니다. 조선 초의 묶음도 나라가 했고, 31본산도 총독부가 했습니다. 한국 불교에서 종파를 갈라놓고 묶은 것이 늘 나라였다면, 종파란 절이 정한 것일까요, 나라가 정한 것일까요?
그리고 지금 조계산 하나에 조계종 송광사와 태고종 선암사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두 절 스님들은 같은 산에서 같은 스님(태고 보우)의 이름을 부릅니다. 갈라진 것은 무엇이고, 갈라지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