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향에서 최한기까지 사상가 35명의 사승 관계를 한 장에 세웁니다. 이어진 선만이 아니라 논쟁한 선과 갈라선 선을 함께 그립니다 — 학맥은 이어짐만으로 되지 않고, 밀어낸 자리가 학파의 경계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로축은 연도가 아니라 세대입니다. 학맥에는 재위처럼 또렷한 시작과 끝이 없고, 스승과 제자가 겹쳐 사는 기간이 깁니다. 연도축에 놓으면 선이 뒤엉키기만 합니다. 그래서 고려말부터 19세기까지 일곱 세대로 나누어 세웠습니다 — 정확한 생몰년은 인물을 누르면 나옵니다.
붉은 선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학맥도는 스승에서 제자로 내려가는 실선만 그립니다. 그러면 조선 사상사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 — 서로 논쟁하고, 이단으로 몰고, 사약을 내린 일 — 이 전부 사라집니다. 정몽주와 정도전이 갈라선 자리, 송시열이 윤휴를 사문난적이라 한 자리, 허목과 송시열이 예송에서 맞선 자리에 붉은 선이 서 있습니다. 학파의 경계는 이어진 곳이 아니라 끊어진 곳에서 생겼습니다.
위의 붕당으로 보기를 누르면 같은 그림에 정파 색이 입혀집니다. 학맥은 그대로인데 색만 바뀌므로, 두 갈래가 어디서 겹치고 어디서 어긋나는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황 → 영남 → 남인, 이이 → 기호 → 서인. 우리는 이 대응을 공식처럼 배웁니다. 큰 줄기에서는 맞습니다. 그런데 이 도표에서 어긋나는 자리를 세어 보면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 기대승, 임성주, 정제두, 박세당, 박제가, 그리고 최한기.
게다가 동인을 남인과 북인으로 쪼갠 것은 학설 차이가 아니라 기축옥사라는 학살이었습니다. 학맥이 붕당을 낳은 것이 아니라, 붕당이 갈라진 뒤에 학맥이 그 경계를 따라 정리된 쪽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의 학문은 정치를 이끈 것일까요, 아니면 정치가 갈라놓은 자리를 뒤늦게 설명한 것일까요? 그리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 — 서경덕과 최한기 — 은 왜 이름만 남고 학파를 남기지 못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