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안 별세 — 천재들의 빛 속에서 온전히 자신으로 산 여성
본명 변동림으로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1936년 문단의 이단아 시인 이상과 결혼했으나, 결혼 4개월 만에 이상이 일본에서 객사하며 짧은 결혼생활을 마쳤다. 그는 도쿄로 건너가 유골을 직접 수습해 고국으로 모셔왔다. 이후 오랜 상실의 시간을 지나 무명이던 이혼남 화가 김환기와 재혼하며, 과거와의 단절을 상징하듯 이름을 변동림에서 김향안으로 바꿨다 — "사랑은 나의 종교"라는 말을 남기며 세속적 시선과 원가족의 반대를 모두 감내한 선택이었다.\\n\\n두 사람은 이후 반세기에 걸쳐 예술적 동반자로서 함께 걸었다. 김향안은 먼저 파리로 유학해 소르본대학과 루브르 미술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대학교수직을 내려놓은 남편을 파리로, 이어 뉴욕으로 불러들이며 김환기가 세계적 화가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1974년 김환기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남편의 예술적 유산을 지키는 데 여생을 바쳤다 — 환기재단을 설립하고, 서울 부암동에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환기미술관을 세웠다. 그 자신도 수필가로서 여러 권의 저서를 남기며 독자적 문필 활동을 이어갔다. 2004년 2월 29일,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30년이 되는 날 뉴욕에서 눈을 감았고,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묘원에 남편과 나란히 묻혔다. "천재 뒤의 여인"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온전히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산 생애였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환기미술관 공식 자료
- 언론 보도 종합(김향안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