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의 마지막 자리는 사람이 아니라 책이다.
칼을 잘 쓰는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 사람의 몸에 있던 기술도 함께 사라진다. 척준경의 칼도, 한명련의 칼도, 김체건의 칼도 그렇게 사라졌다. 몸의 기술을 몸 밖에 남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정조 때 그 답 하나가 나왔다.
석 달 만에
정조는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를 불렀다. 장용영에 책 만드는 곳을 열고, 궁궐에 있던 병서 스무 권 남짓을 내주었다. 석 달 만에 일이 끝났다. 1790년에 나온 『무예도보통지』다.
세 사람의 몫은 나뉘어 있었다. 이덕무와 박제가는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옛 책을 뒤져 고증했다. 백동수는 장용영의 무사로 그 동작을 실제로 해 보고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했다. 백동수의 이야기는 「신비한 인물사전」에서 따로 다루었다.
스물네 가지
이 책에는 스물네 가지 무예가 그림과 함께 실렸다. 창 쓰는 법, 칼 쓰는 법, 맨손 권법, 몽둥이, 그리고 말 위에서 칼과 창을 쓰는 법과 말 위의 재주까지.
이 스물네 가지는 한 번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이 시리즈의 앞 편들이 그 층을 이룬다.
첫 층은 한교의 『무예제보』 여섯 가지다. 명나라 군대에게 묻고 배운 것이다.
둘째 층은 사도세자가 대리청정할 때 열두 가지를 더해 엮은 『무예신보』다. 여기에 김체건이 들여온 왜검과 교전이 들어갔다. 정조는 서문에서 이 책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뜻을 잇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셋째 층이 정조가 말 위의 무예 여섯 가지를 더한 것이다. 그렇게 스물넷이 되었다.
한 사람의 칼이 다음 사람의 책이 되고, 그 책이 다시 다음 책이 되었다.
본국검과 황창랑
이 책에는 「본국검」, 곧 우리나라 칼이라는 이름의 검법이 있다. 책은 그 뿌리를 신라의 소년 황창랑에게 둔다.
황창랑 이야기는 이렇다. 신라의 어린 소년이 백제에 들어가 왕 앞에서 칼춤을 추다가 왕을 찌르고 자신도 죽었다. 신라 사람들이 슬퍼하여 그의 얼굴을 본뜬 탈을 쓰고 칼춤을 추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도 삼국유사에도 없다. 조선 시대의 지방지와 문집에서야 나온다. 황창이 황산벌의 관창이 잘못 전해진 이름이라는 견해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무예도보통지』를 엮은 사람들도 그 기원이 전해 오는 말에 기댄 것이며, 그 칼 쓰는 법은 이미 잊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적었다.
이 시리즈의 1부에서 강이식을 보며 했던 이야기가 여기서 다시 나온다. 우리 칼의 뿌리를 찾고 싶은 마음, 그러나 기록이 없는 자리.
조선세법
또 하나 흥미로운 칼이 있다. 「조선세법」이다. 명나라 사람 모원의가 엮은 병서 『무비지』에 「조선의 칼 쓰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던 검법이다. 정작 조선에서는 잊혀 있었다.
『무예도보통지』는 이것을 중국 책에서 되찾아 와 「예도」라는 이름으로 실었다. 우리 칼이 남의 나라 책 속에 살아남아 있다가 돌아온 것이다.
한글로 따로
이 책에는 한글로 풀어 쓴 책이 따로 딸려 있다. 범례는 그 까닭을 이렇게 적는다. 「원래 책의 언해가 그림 사이사이에 섞여 있어 펼쳐 보기 어려웠다. 이제 언해를 따로 빼내 한 권으로 엮어 붙인다.」
글을 모르는 군사도 그림을 보고 우리말 풀이를 들으며 따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기술을 몇몇 달인의 몸에 가두지 않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리에 놓았다.
정조는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이 쓰여 무관들이 날마다 병법에 익숙해진다면, 나라가 앞 임금의 뜻을 이어 이룬 본뜻을 저버리지 않게 될 것이다.」 「병기총서」에는 이런 줄도 있다. 「나라에 일이 없는 때에 쓸모 있는 책을 엮어 두면, 적을 막는 데 실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쟁이 없을 때 전쟁을 준비하는 책. 칼을 잘 쓰는 한 사람이 아니라, 칼을 쓸 수 있는 많은 사람을 만들려는 책이었다.
소드마스터는 어디에 남는가
이 시리즈는 「고려의 소드마스터」라는 인터넷 별명에서 시작했다. 앞의 편들을 지나오며 본 것은 이렇다.
삼국의 무인들은 대사와 함께 열전에 남았다. 고려의 무인들은 숫자와 장면으로 남았다. 조선의 장수들은 실록과 야담 사이에서 두 번 기록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칼 쓰는 법 자체가 그림과 한글로 남았다.
소드마스터의 칼은 그 사람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그 칼 쓰는 법을 누군가 묻고, 적고, 그리고, 풀어 쓰면 남는다. 『무예도보통지』의 그림 속 군사들은 이름이 없다. 그 이름 없는 사람들이 지금도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근거
관찬 문헌. 편찬 경위와 인용한 문장은 『무예도보통지』의 정조 어제서, 범례, 「병기총서」를 따랐다. 『무예신보』의 편찬 연도는 책 안에서도 기사년(1749)과 기묘년(1759)이 함께 보여 자료마다 다르게 적는다. 본국검의 황창랑 기원은 책 스스로 전해 오는 말에 기댄 것이라고 밝힌다. 「조선세법」이 『무비지』에 어떻게 실리게 되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한 사람의 칼은 그 사람과 함께 사라지고, 책에 남은 칼은 이름 없는 많은 사람의 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드마스터는 칼을 가장 잘 쓴 사람일까, 그 칼을 남긴 사람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