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체건의 아들 김광택은 검객이라기보다 신선으로 기록된 사람이다. 그를 그린 글은 유득공의 아들 유본학이 쓴 「김광택전」이다. 이 편은 그 글을 따라간다. 처음부터 말해 두자면, 이 글은 역사 기록이라기보다 신선 이야기에 가깝다.
남다른 바탕
「김광택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김광택은 서울 사람이다. 아버지는 체건이다.」
광택은 나면서부터 남다른 바탕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김신선이라 불리던 사람을 따라 곡식을 끊고 몸을 가볍게 하는 법을 배웠다. 김신선은 박지원의 「김신선전」에 나오는 김홍기와 같은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짚신 한 켤레
글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서울에서 금강산까지는 사백 리다. 김신선은 짚신 한 켤레로 세 번을 오갔는데 신이 해지지 않았다. 광택도 짚신 한 켤레로 두 번을 오갔는데 해지지 않았다.
그는 숨을 고르는 태식법을 익혔고, 겨울에도 홑옷으로 지냈다고 한다.
몸이 감추어지는 칼
칼 이야기는 짧다. 「칼춤이 신의 경지에 들어, 땅 가득 꽃이 지는 모양을 지으면 몸이 감추어져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땅 가득 꽃이 지는 모양, 만지낙화세. 칼이 너무 빨라 칼빛만 보이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동작이 무엇이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글쓴이는 이렇게 맺는다. 「체건은 칼 쓰는 법을 얻어 나랏일에 충성했고, 광택은 또 그 아버지의 기이한 재주를 전했으니 기이하지 않은가. 이 또한 검선의 무리가 아니겠는가.」
여든의 얼굴
글의 끝은 이렇다. 여든이 되어도 얼굴이 아이 같았고, 죽던 날 사람들은 그가 시해했다고 여겼다. 시해는 신선이 몸을 벗고 떠나는 것을 말한다.
다만 한문 원문에서 이 대목의 주어가 생략되어 있어, 아버지 이야기인지 아들 이야기인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본다. 이어지는 「벼슬이 첨사에 이르렀다」는 줄이 아들의 실제 이력과 맞아, 아들 쪽으로 읽는 견해가 많다.
기록 속의 실제 사람
신선 이야기 밖에도 김광택은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그가 영조 때 금위영의 교련관이 되었고, 몇 해 뒤 고금도 첨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아버지처럼 군영에서 칼을 가르친 무관이었다.
흔히 백동수가 그의 제자였다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옛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뒷날의 소설과 드라마가 이어 붙인 이야기로 보인다.
왜 신선이 되었나
이 글을 연구한 사람들은 이것을 검객 이야기가 아니라 신선 이야기로 분류한다. 글을 쓴 유본학은 서얼 출신이었다. 재주가 있어도 세상에 쓰이지 못한 사람이 칼과 신선술로 세상을 벗어나는 이야기에, 쓰는 사람의 마음이 비쳤다고 보기도 한다.
아버지는 적의 칼을 배워 와 나라에 바쳤다. 아들의 칼은 이야기 속에서 몸을 감추고 하늘로 갔다.
이 이야기의 근거
개인 기록, 그리고 신선 이야기에 가까운 전기. 유본학의 「김광택전」이 거의 유일한 출처다. 원본 문집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이가원이 엮은 『이조한문소설선』으로 전한다. 교련관과 첨사 이력은 승정원일기에 있다고 연구자들이 전한다. 이 편에서 승정원일기 원문은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칼의 기술이 극에 이르면 사람들은 그것을 신선술이라 불렀다. 기술을 이야기로 바꾸는 것은 그 기술을 높이는 일일까, 잃어버리는 일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