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령의 일생은 「신비한 인물사전」에서 다루었다. 힘이 세다는 전설이 가장 많은 의병장인데, 정작 큰 싸움을 치를 기회 없이 옥에서 죽은 사람이다.
이 편은 하나만 본다. 같은 조선왕조실록 안에서 그의 힘이 어떻게 두 번 적혔는가.
선조실록의 김덕령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국문을 받다 김덕령이 죽은 직후, 추국청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선조실록에 남은 말이다.
「김덕령이 이미 형장에 죽었습니다. 이 사람은 전부터 용력으로 자못 헛된 이름이 있었습니다.」
헛된 이름. 원문은 허성(虛聲)이다. 추국청은 이어서 그를 지목한 역적의 공초가 스무 건이 넘는다고 적었다. 그를 죽인 쪽의 말이다.
선조수정실록의 김덕령
선조실록은 광해군 때 북인이 엮었다. 그 뒤 서인이 권력을 잡자 이 실록이 공정하지 않다며 고쳐 쓴 실록을 따로 만들었다. 그것이 선조수정실록이다. 효종 때 완성되었다.
같은 김덕령이 이 수정실록에서는 이렇게 적힌다.
「김덕령은 신력을 지닌 사람으로 나는 범처럼 날래고 굳셌으며 자못 기개와 절개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해의 기사에는 이런 장면이 들어간다.
「왜인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감히 그의 진영에 가까이 오지 못했다. 언젠가 왜인의 진영에서 호랑이 두 마리를 손으로 때려잡아 왜인에게 주니 왜인들이 탄복하였다.」
이 시리즈에서 실록이 맨손 호랑이를 적은 것은 이 한 번뿐이다.
같은 기사는 그가 붙잡히는 장면도 전한다. 조정은 그의 용력이 뛰어나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그가 체포에 응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여러 방책을 세웠다. 그러나 김덕령은 순순히 붙잡혀 옥에 갇혔다.
선조가 물었다. "이 사람을 살릴 길이 없는가." 유성룡이 답했다. "이 사람이 살 길은 없습니다." 한 관원은 이렇게까지 말했다. "나라가 차츰 편안해지는데 장수 하나쯤 무슨 대수입니까."
수정실록은 그 뒤를 이렇게 맺는다. 「남쪽 사람들은 덕령의 일을 경계하여 용력이 있는 자는 모두 숨어 버리고 다시는 의병을 일으키지 않았다.」
두 실록 사이
한쪽은 헛된 이름이라 했고, 한쪽은 호랑이 두 마리를 때려잡았다고 했다. 둘 다 정사다. 그러나 하나는 그를 죽인 시대의 기록이고, 하나는 그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보는 시대의 기록이다.
수정실록의 호랑이는 그 사이 수십 년 동안 사람들 입에서 자란 이야기가 정사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 이야기를 정사에 넣은 것 자체가 하나의 판정이었다. 이 사람의 힘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그 뒤 현종 때 그의 관작이 되살아났고, 정조 때 충장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 이야기의 근거
정사. 다만 서로 다른 두 실록이다. 「헛된 이름」은 선조실록, 「신력」과 「호랑이 두 마리」는 선조수정실록(후대에 고쳐 쓴 실록)에 있다. 그의 시조 「춘산곡」은 『김충장공유사』에 전한다.
한 사람의 힘을 두고 같은 나라의 역사책이 정반대로 적었다. 어느 쪽이 맞는지보다, 왜 두 번 적어야 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