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서 칼도 활도 아닌 맨주먹이 나오는 첫 편이다.
이의민은 「신비한 인물사전」에서 한 번 다루었다. 소금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고려의 최고 권력자가 된 사람이다. 이번에는 그의 주먹만 본다.
수박으로 출세하다
고려사는 그를 이렇게 적는다. 「키가 여덟 자이고 힘이 남보다 뛰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잇는다. 「의민이 수박을 잘하여 의종이 아꼈고, 대정에서 별장으로 올렸다.」
수박은 맨손으로 겨루는 무예다. 고려의 왕들은 수박 겨루기를 구경하며 잘하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곤 했다. 이의민은 주먹 하나로 궁궐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 주먹은 나중에 무서운 데 쓰였다. 무신정변 뒤 경주에 갇혀 있던 의종을 죽일 때, 고려사는 그가 왕의 등뼈를 꺾었다고 적는다. 손에서 소리가 났다고 했다.
중서성의 두 사람
세월이 흘러 이의민은 재상이 되었다. 같은 무렵 재상 자리에 두경승이 있었다. 두경승도 무인 출신이고 이름난 장사였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중서성에 함께 앉아 있었다. 이의민이 자랑을 시작했다.
"아무개가 제 힘을 자랑하길래, 내가 이렇게 쳤지."
그러고는 주먹으로 기둥을 쳤다. 기둥 위의 무엇인가가 흔들렸다. 흔히 서까래가 흔들렸다고 전하는데, 지금 남은 원문에서는 바로 그 글자가 빠져 있다.
두경승이 받았다.
"어느 때 내가 맨주먹으로 치니 무리가 모두 흩어져 달아났지."
그러고는 벽을 쳤다. 주먹이 벽에 박혔다.
장면은 거기서 끝난다. 누가 이겼는지 기록은 말하지 않는다.
기둥을 치는 사람
그 뒤에도 이의민은 기둥을 쳤다. 두 사람이 다툰 어느 날, 그는 주먹으로 기둥을 치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공이 있어 내 위에 있느냐."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액원의 이와 두, 밀원의 손과 김」이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나라의 높은 자리가 힘센 무인들로 채워져 있다는 비꼼이었다.
누가 쓴 기록인가
이 장면을 읽을 때 기억해 둘 것이 있다. 이의민의 이야기는 고려사의 「반역전」에 실려 있다. 그를 죽이고 권력을 잡은 최충헌 쪽의 시대를 거쳐 정리된 기록이다. 힘자랑 장면도 그를 우러러보는 투가 아니라, 재상 자리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무인을 비웃는 투로 읽힐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은 두경승의 열전에는 없다. 두경승 쪽 기록에서 이의민은 공신 잔치에서 재상이 광대처럼 노래하느냐고 꾸짖는 사람으로 나올 뿐이다.
이의민은 1196년 미타산의 별장에 있다가 최충헌 형제에게 죽었다. 주먹 하나로 올라간 사람이 칼에 끝났다.
이 이야기의 근거
정사. 고려사 열전 「이의민」(반역전). 기둥과 벽 이야기는 이의민 열전 안에 있고 두경승 열전에는 없다. 남은 원문에서 기둥을 쳤을 때 흔들린 것이 무엇인지 적힌 글자가 빠져 있다.
힘은 언제 무예가 되고, 언제 폭력이 될까. 그 경계를 정하는 것은 주먹을 쓴 사람일까, 그것을 적은 사람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