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소금과 체를 파는 장사꾼이었고 어머니는 절의 종이었다. 고려사는 그의 출신을 이렇게 적었다.
그가 나중에 고려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
올라가는 길
키가 여덟 자였고 힘이 대단했다고 기록됐다. 두 형과 함께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다 잡혀 들어갔는데, 안찰사가 그의 사람됨을 보고 개경으로 보냈다.
그는 수박이라는 무예로 의종의 눈에 들어 벼슬을 얻었다.
1170년 무신정변이 일어났다. 그는 앞장서서 문신들을 죽였다. 이때 세운 공으로 지위가 올라갔다.
1173년, 김보당이 의종을 다시 세우려고 난을 일으켰다. 이의민이 경주로 가서 의종을 처리했다.
고려사가 적은 그 방식은 이렇다. 술을 올린 뒤 왕의 등뼈를 꺾어 죽였다. 그리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웃었다.
시신은 이불에 싸서 못에 던졌다.
붉은 무지개
그가 권력을 잡기 전 이야기가 하나 전한다.
그가 젊었을 때 꿈을 꾸었다. 두 겨드랑이에서 붉은 무지개가 솟아 하늘까지 뻗치는 꿈이었다.
형들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너는 반드시 크게 귀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 당시 십팔자(十八子)가 나라를 얻는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十과 八과 子를 합치면 李가 된다. 이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이의민이 그 말을 믿었다고 고려사는 적었다. 그래서 경주에서 세력을 키우고 신라를 다시 세우려는 자들과 통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그를 제거한 쪽이 남긴 기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 아니면 죽일 명분으로 붙인 것인지 가려낼 자료가 없다.
다만 십팔자 도참이 실제로 유행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200년 뒤 그 예언은 다른 이씨에게서 이루어진다.
끝
1183년 이후 그는 최고 자리에 있었다. 아들들이 남의 재산을 빼앗고 여자를 겁탈해도 막지 못했다. 백성들이 그 집안을 두려워했다.
1196년, 최충헌과 최충수 형제가 그를 죽였다. 최씨 무신정권이 여기서 시작된다.
이 사람의 자리
이의민을 그저 폭력적인 권력자로만 정리하면 놓치는 것이 있다.
소금장수의 아들이자 절 노비의 아들이 나라의 최고 자리에 오른 것은 고려 역사에서 대단히 예외적인 일이다. 무신정변이 만든 균열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균열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음 편의 만적이 봉기를 모의하면서 든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정중부 이래로 천한 자리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많으니,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느냐고.
한 사람의 출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증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