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손 — 열두 명을 이끌고 성문을 나섰다, "내가 움직이면 군사들 마음이 흔들린다"

1231 9월 · 귀주성 (평북 구성)

성문을 열고 몽골 대군을 향해 나서는 장수와 열두 명의 결사대, 성문 안쪽에서 본 뒷모습
AI 재현 실제 사진이 아니라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해 그린 그림

몽골이 처음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 북쪽 성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그 가운데 끝까지 무너지지 않은 성이 있었다. 귀주성이다.

이 성을 지킨 사람으로 병마사 박서가 먼저 꼽힌다. 그리고 그 곁에 정주에서 온 분도장군 김경손이 있었다. 김경손은 남문을 맡았다.

성문 밖으로

몽골군이 성 남쪽에 이르렀다. 고려사 열전은 김경손이 별초 열두 명을 이끌고 성문을 나섰다고 전한다. 오늘날의 글에서는 그를 포함해 열세 명이라고 쓰기도 한다.

나가기 전에 그는 군사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는 목숨을 돌보지 말고, 죽더라도 물러서지 마라."

그는 몽골군과 맞붙어 싸웠고, 몽골군은 물러갔다. 이 싸움에서 그는 팔에 화살을 맞고도 싸움을 그치지 않았다고 전한다.

머리 위로 날아간 돌

몽골군은 포차로 큰 돌을 날려 성을 쳤다. 귀주성 성벽과 성곽 이백여 칸이 무너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성안 사람들은 무너지는 대로 다시 쌓으며 버텼다.

그 가운데 이런 장면이 전한다. 김경손이 성 위에서 싸움을 지휘하는데, 포차에서 날아온 돌이 그의 머리 위를 지나 뒤에 선 군사를 맞혔다. 곁의 사람들이 자리를 옮기라고 하자 그가 말했다.

"안 된다. 내가 움직이면 군사들 마음이 흔들린다."

그는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이 장면에서 그는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 그저 서 있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쓰면서 이 장면만큼 무서운 무력을 본 적이 드물다.

뒷날 실학자 안정복은 귀주성의 싸움을 고구려의 안시성에 견주었다.

그 뒤

김경손은 그 뒤 전라도에서 일어난 이연년 형제의 난을 진압했고, 추밀원의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끝은 적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권력자 손에서 왔다. 무신 집권자 최항이 그를 시기하여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 그리고 몇 해 뒤 바다에 던져져 죽었다고 전한다.

몽골의 돌 앞에서도 움직이지 않았던 사람이, 같은 나라 사람의 손에 바다에 던져졌다.

이 이야기의 근거

정사. 고려사 열전 「김경손」과 고려사 세가 고종 18년. 다만 이 편은 열전 원문을 직접 옮기지 못했다. 결사대의 인원(열두 명 또는 열세 명), 대사, 돌과 화살 장면은 열전을 옮긴 여러 글을 맞대어 쓴 것이라 세부가 글마다 조금씩 다르다. 세가에는 몽골군이 귀주성을 에워쌌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다는 기사와 성곽이 무너지면 곧 다시 쌓았다는 기사가 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기록의 문장이 모호한 데가 있다.

가장 용감한 일은 앞으로 뛰어드는 것일까,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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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역사 속 소드마스터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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