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준경의 일생은 「신비한 인물사전」에서 한 번 다루었다. 궁궐에 불을 지르고, 그 불로 지킨 사람을 자기 손으로 끌어내린 사람. 이번에는 그 사람의 싸움 장면만 원문에서 하나씩 꺼내 본다. 소드마스터라는 별명이 정말 기록에 맞는지 보기 위해서다.
먼저 알아 둘 것이 하나 있다. 척준경의 열전은 고려사의 「반역전」에 실려 있다. 이자겸, 묘청과 같은 권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난 싸움 장면 대부분은 자기 열전이 아니라 윤관의 열전에 적혀 있다.
첫 장면 — 패한 싸움에서
숙종 때 고려군이 동여진을 치다가 크게 졌다. 척준경은 장수 임간에게 무기와 갑옷 입힌 말을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적진에 들어가 적장 하나를 베었다.
물러날 때 적의 기병 백여 명이 뒤쫓아 왔다. 척준경은 대상 인점과 함께 적장 둘을 쏘아 죽였다. 적이 감히 다가오지 못해 고려군이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활을 쏜 사람들의 이름이 같은 기록에 있다. 「단기 돌격」이라는 말은 원문에 없다.
석성 — 방패를 들고
윤관이 여진을 정벌할 때다. 고려군이 여진의 석성을 쳤으나 성이 험해 손을 쓰지 못했다.
윤관이 말했다. "오늘이 바로 척준경이 몸을 바쳐 은혜를 갚을 때다."
척준경은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적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추장 여러 명을 쳐 죽였다. 그 틈에 고려군이 성을 떨어뜨렸다. 윤관은 그에게 비단 서른 필을 상으로 주었다.
가한촌 — 포위된 원수를 구하다
윤관과 오연총이 군사 8천을 이끌고 가한촌의 좁은 길을 지나다 여진의 매복에 걸려 겹겹이 에워싸였다.
척준경이 구하러 가려 하자 동생 준신이 말렸다. 척준경이 답했다.
"너는 돌아가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여라. 나는 나라에 몸을 바쳤으니 의리상 멈출 수 없다."
그는 크게 외치며 적진에 뛰어들어 열 명 남짓을 쳐 죽였다. 뒤이어 구원군이 와서 포위가 풀렸다. 윤관은 울면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오늘부터 나는 너를 아들처럼 보겠다. 너는 나를 아버지처럼 보아라."
영주성 — 성 밖으로
여진의 보병과 기병 2만이 영주성 남쪽에 몰려왔다. 성안의 장수들은 망설였다. 척준경이 말했다.
"나가 싸우지 않으면 적은 날로 늘고, 성안의 양식은 떨어지고, 구원군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는 죽기를 각오한 군사들을 이끌고 성을 나가 싸워 19명을 베었다.
장면을 모아 보면
원문에서 그가 직접 벤 숫자는 적장 하나, 적장 둘, 추장 여럿, 열 명 남짓, 열아홉이다. 한 사람이 수백을 상대한 판타지 같은 장면은 없다.
그 대신 같은 모양이 되풀이된다. 아군이 막혔을 때, 혹은 무너질 때, 그가 맨 앞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한 번이 싸움 전체를 뒤집는다. 소드마스터라는 별명은 숫자보다 이 되풀이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왜 윤관의 열전인가
이 장면들이 윤관 열전에 자세한 것은 윤관의 공을 적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척준경의 용맹은 윤관을 돋보이게 하는 이야기 안에서 함께 남았다.
그리고 척준경 자신의 열전은 반역전에 있다. 그 열전에는 이자겸과 함께 궁궐을 범한 일, 정지상이 「한때의 공으로 만세의 죄를 덮을 수 있겠느냐」고 탄핵한 말이 길게 실려 있다. 몇 해 뒤 인종은 「궁궐을 범한 죄가 무겁지만 공도 작지 않다」며 그의 가족을 모여 살게 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고향 곡주에서 등에 종기가 나 죽었다.
이 이야기의 근거
정사. 고려사 열전 「척준경」(반역전)과 「윤관」. 싸움 장면의 상세한 부분은 대부분 윤관 열전에 있다. 석성과 가한촌 싸움의 정확한 달은 원문에 없어 자료마다 다르게 적는다.
「소드마스터」라는 별명은 늦어도 2015년 무렵 인터넷 게시판에서 쓰이고 있었다.
한 사람의 가장 빛나는 장면이 남의 열전에 적히고, 그 사람의 이름이 붙은 열전에는 죄가 적힌다면, 그 사람은 어느 쪽 기록으로 기억되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