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군 부용면 사람들에게 그해 여름은 세 번에 걸쳐 왔다.
1차로 소집된 보도연맹원들은 분터골과 피반령에서 학살당했다. 2차로 소집된 26명은 수리너머 고개에서 죽었다. 그리고 3차로 150명이 소집돼 부강초등학교 강당에 갇혔다. 교실 두 칸을 헐어 행사 때 쓰던 공간이었다.
닷새째 되던 날, 군인들이 학교로 들어왔다. 계급장도 없이 군복만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감금된 이들을 죽인다며 M1 소총에 실탄을 채우고 한 줄로 똑바로 서라고 했다.
그때 지서 주임 이 아무개가 나섰다. 여기 있는 분들은 내가 책임지니까 군인들은 건드리지 마라.
군인들은 퇴각했고, 150명은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갔다.
이 자리가 이 시리즈의 다른 편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다른 자리에서는 명령서를 돌려보내거나 명부를 태우거나 문을 열어 주는 식으로, 집행하는 사람들이 오기 전에 끊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총에 실탄이 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 앞에 섰다.
계급장 없이 군복만 입은 사람들이라는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해 여름 예비검속과 처형에는 육군 CIC, 헌병, 우익 청년단체가 뒤섞여 움직였고, 현장에서는 누가 어느 소속인지 분간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경기도 이천에서는 군복을 입고 경찰 마크를 붙인 사람들이 보도연맹원 100명을 총살했다는 기록도 있다. 지서 주임이 내가 책임지겠다고 한 것은, 그 자리에서 자기 소속과 직위를 유일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책임진다는 말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나중에 무슨 일을 저지르면 그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고, 상부가 문제 삼으면 자기가 답하겠다는 뜻이다. 안대용은 비슷한 자리에서 사살됐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다. 성만 이 아무개로 전한다. 근거는 1924년생 김상근이 남긴 증언이다.
부용면에서는 1차와 2차로 소집된 사람들이 이미 죽은 뒤였다. 살아난 150명은 마지막 차례였다. 앞선 두 번에는 아무도 앞에 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