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수 — 옛 부하의 손자가 헌병대장이었다

1950 7월 · 충북 청주 북일면

이 편의 주인공은 경찰도 공무원도 아니고, 1950년에 이미 노인이었던 사람이다.

한봉수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의병을 이끈 의병장이다. 충북 청주 일대에서 활동했고,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가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것은 전쟁이 난 해 여름, 북일면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다.

북일면 보도연맹원들이 전쟁 직후 내수초등학교에 갇혔다가 며칠 뒤 소방서 창고로 옮겨졌다. 그 가운데 일부는 북이면 옥녀봉으로 끌려가 죽었다. 나머지가 살아난 것은 한봉수 덕이었다.

그가 한 일은 헌병대 대장을 만나 보도연맹원들을 풀어줄 것을 건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만남이 성사된 이유가 특이하다. 당시 헌병대 대장은 육군 상사였는데, 그 사람의 할아버지가 한봉수가 의병 활동을 할 때 부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작동한 것은 직위도 법도 아니고, 40년 전 의병 부대의 인연이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잠깐 망설이게 된다. 아름다운 인연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런 인연이 없는 사람은 방법이 없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앞서 합천 가회 편에서도 적었지만, 그해 여름에는 사람의 생사가 기관 사이의 개인적 관계에 자주 좌우됐다. 법과 절차가 사람을 지키지 못할 때 남는 것이 사적인 인연이라는 것은, 결국 법과 절차가 무너져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그해 여름 학살당한 보도연맹원 가운데는 항일운동을 했던 사람이 적지 않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상당수가 해방 후 전향 절차를 거쳐 보도연맹에 이름을 올렸다가 1950년에 죽었다. 독립유공자 이효정과 이병희의 친척이자 동지인 독립운동가 이병기가 그렇게 희생됐고, 지금도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인지도가 낮아 이름조차 남지 않은 경우는 훨씬 많다.

의병장이 헌병대장을 찾아가 보도연맹원을 살려 달라고 청한 그 자리에는, 그런 사정이 겹쳐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근거는 내수3리에 살던 김문섭(1925년생)이 2006년에 남긴 증언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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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람을 살린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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