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경남 함양군 유림면에서 경찰이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장항마을 맞은편 화촌초등학교에 모두 모아 처형하려 했다.
그때 유림면 지서 주임이던 조 아무개가 한 일은 아주 간단했다. 수동 방향으로 피난을 가려던 옥동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곳으로 가면 안 된다. 국계리로 가시오.
그 한마디로 유림면 옥동마을에서는 보도연맹원이 한 사람도 처형되지 않았다.
이 편을 따로 세운 이유는 살린 방식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성 하나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2008년 피해자 현황조사 최종결과보고서 332쪽에 그는 조 아무개 주임으로 적혀 있다. 조사 당시 증언자가 성만 기억했거나, 이름까지 밝히기를 꺼렸거나, 확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해 여름의 기록에는 이런 자리가 많다. 이 시리즈에도 그런 사람이 둘 있다. 이 조 주임과, 부강초등학교 강당에서 군인들 앞을 막아섰다는 이 아무개 주임이다.
왜 이렇게 되는지를 잠깐 생각해 볼 만하다. 학살에 관여한 사람의 이름은 유족과 생존자가 평생 기억한다.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려준 사람의 이름은 그렇지 않다. 살아난 사람은 그 뒤로도 오래 몸을 낮추고 살아야 했고, 살려준 사람 역시 그 일이 알려지면 곤란해졌다. 이섭진이 비석 때문에 특무대에 불려간 일이 그 증거다. 서로가 서로를 굳이 말하지 않는 편이 안전했다.
게다가 유족들은 연좌제에 시달렸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응한 301명의 피해 유형을 보면 각종 신원조회가 30퍼센트, 일상생활에서의 감시가 17퍼센트, 국내외 여행과 출입국 좌절이 14퍼센트였다. 공무원 임용시험과 사관학교 입학에서 걸린 사람도 많았다.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말하는 것조차 위험한 시절에, 아버지를 살려준 사람의 이름을 기록으로 남길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는 성만 남은 이름이 실린다. 이름을 아시는 분의 제보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