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임상 — 못 배워서 군중 심리에 가입한 것이니

1950 7월 · 경남 합천 가회면

경남 합천군 가회면장 허임상이 지서주임 조정수를 설득하며 한 말은 이렇게 전한다. 보도연맹원들은 못 배워서 군중 심리에 가입한 것이니 풀어줘야 한다.

김해 한림면장 최대성의 말과 나란히 놓아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다 면장이고, 두 사람 다 가입 경위를 근거로 삼았다. 이 사람들은 사상 때문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사정 때문에 가입한 것이라는 논리다.

이 논리가 통했던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자리가 면사무소였다. 보도연맹원 모집은 지역 단위로 할당량이 내려오는 방식이었고, 그 할당을 채우는 일은 면과 지서가 나눠서 했다. 곡식을 준다고 해서, 도장을 안 찍으면 품앗이를 안 해 준다고 해서, 순경이 몇 명은 채워야 한다고 해서 이름이 올라간 사람들이었다. 면장은 그 과정을 눈으로 본 사람이다.

허임상에게는 유리한 조건이 하나 더 있었다. 평소 지서주임 조정수와 관계가 좋았다. 이 사소한 사실이 결과를 갈랐다. 그해 여름 사람을 살린 자리들을 늘어놓고 보면, 계통이 다른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경우가 여럿이다. 김해 한림에서는 면장과 청년단장이 형제였고, 청원 오근장에서는 파출소장과 의용소방대장이 말을 트는 사이였고, 청원 북일에서는 의병장의 옛 부하의 손자가 헌병대장이었다.

이것을 미담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그 시절 한 사람의 생사가 기관 사이의 개인적 친분에 좌우됐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임상이 풀어준 사람이 몇 명인지는 집계되지 않았다. 다만 주민들이 그의 의로운 행위를 기리기 위해 공덕비를 세웠고, 그 비석은 지금도 합천군 가회면에 서 있다. 이 시리즈에서 물증이 남은 몇 안 되는 자리 가운데 하나다.

같은 합천군의 다른 자리도 함께 적는다. 합천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희생자 수를 추산할 자료조차 부족했던 43개 시군 가운데 하나로 분류돼 있다. 희생 사실은 확인됐는데 몇 명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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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람을 살린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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